세계는 날마다 새로운 빛 속에서 다시 시작된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서둘러 버스 정류소로 달려가는 길에 공들여 화장한 얼굴은 땀으로 번지고, 차려입은 옷도 땀에 젖어 불쾌하게 몸에 들러붙고, 습기 머금은 공기에 숨이 턱턱 막힌다. 찰나의 순간에 눈앞에서 바뀐 신호에 걸려 버스를 놓치고, 다음 버스는 15분 뒤에나 온다는 알림에 욕이 절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삼킨다. 도저히 태양아래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 어려워 번거롭지만 갈아타야 하는 버스가 와서 서둘러 탔는데 버스는 이미 나와 같이 열기를 내뿜는 불쾌한 사람들로 가득해 최저 온도로 가동하고 있는 에어컨은 소리만 무색하다. 목적지 없는 엄청난 불쾌감과 분노감이 뭉개 뭉개 피어올랐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장마가 끝난 이후의 여름이 더운 건 너무 당연한 일이고, 다음 버스가 15분 뒤에 온다는 알림을 통해 그나마 에어컨이 작동되는 버스에 타서 작렬하는 태양빛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너무 편리한 이 세상 속에서 나는 나의 불편함에만 너무 몰입하고 사실은 별로 불행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기어코 불행을 찾아내고 있지 않은가?
2024년의 뜨거운 여름을 내 멋대로 판단하지 않고 명징하게 직시하기 위해 2024년 6월에 개정 2판으로 따끈하게 출판된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모음인 결혼여름을 나에게 선물했다.
세상에 의미가 없기에 이상도 절망도 없고, 절대적인 유물론도 물질 이상의 것도 없으므로 이 세계에 일체의 의미를 부정함으로써 모든 가치 판단을 폐지하고, 오직 산다는 것 그 자체에 상대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카뮈의 철학은 지금 여기서 나의 감각과 사고를 비판단적으로 자각하는 마음 챙김과 닮은 듯 보이지만 사실은 좀 더 열정적이다. 개인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의 존재와 내가 영위하는 삶 속에서 일치감을 느끼는데서 기쁨을 맛보고, 절망하지 않고 찢어진 것을 다시 꿰매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세상이 주는 부조리에서 비롯되는 불안을 진정시켜 줄 처방을 갖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빛나는 차가운 바다에 뛰어 들어가 한참을 수영하며 몸을 식히다가, 몸이 차가워지면 해변가로 기어 나와 뜨겁게 달궈진 모래 위에 누워 한동안 태양 빛에 몸을 말리며 낮잠을 자다가, 미지근한 수박을 반으로 갈라 얼음과 사이다를 동동 띄워 먹으며 여름이 허락한 제철 행복을 제대로 누리는 삶. 현재의 내 삶 속에서 자연을 제대로 직시한 삶을 살다 보면, 최악의 세월 속에서도 그 하늘은 한 번도 내게서 떠난 적이 없었음을 마침내 깨닫게 되고,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는 나의 행운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굳이 부조리에만 초점을 맞추면 메말라 비틀어진 삶을 살수 밖에 없다. 나는 기어코 오늘 나에게 허락된 하루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기쁨을, 행복을 찾아내고야 말겠다. 살아있는 한 절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