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자리에 맞는 일을 하시
긴 호흡을 하고 회의를 들어간다.
오늘은 또 뭐로 꼬투리를 잡힐까?
오늘은 또 어떤 기분으로 회의에 들어오시나?
오전마다 진행하는 회의는 정말 피를 말리는 시간이다.
난, 아무리 아무리 적응해보려고 해도 위축이 되고 주눅들게 된다.
직장생활을 십년넘게 해오면서 이렇게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말 한마디 한마디 건네는 게 쉽지 않고, 오늘은 또 어떤 보고를 해야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매일 이렇게 회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 들은 이야기는 내가 돌아가는 상황을 다 알고 있어야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명목으로 회의를 진행하신다고 한다. 하지만, 막산 우리네 실무진들이 느끼는 감정은 '우리를 믿지 못하시는 구나' 라는 생각뿐이다. 상사가 아래 직원을 믿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몸소 체감하면서 하루하루 회사생활을 한다. 다른 직원은 상사분이 들을 마음이 없으니 나도 마음을 닫는다 라고 이야기 할 정도. 본인은 알고 계시면서도 우리에게 상사의 스타일에 맞추라는 말 뿐이다.
인간적으로는 참 좋아서 내 안에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공존한다. 따로 불러 뭐라도 하나 챙겨주시려고 하고, 회사 밖에서 이야기할 때는 대화도 잘 통하는 느낌이다. 다만, 이 분의 업무 스타일이 A부터 Z까지 모든 일을 다~~~~~~~~~~ 알고 싶어하시는 성향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오히려 독이되어 말한마디 건네기가 무섭고 두려울 때가 있는 것이다. 대기업도 아니고 빠른 의사결정이 매번 필요한 중소기업임에도 보고하느라, 어떻게 보고할지 생각하느라 시간보내기 급급하다.
나는 리더의 모습을 그려본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하나하나 신경쓰는 리더가 좋은 리더일까? 말로는 디테일을 챙기는 것 처럼 보이지만, 업무를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의사결정하려고 노력하시는 것 처럼 보이지만, 막상 실상은 매번 직원들을 답답해하고, 자기 기준에 못 맞춘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아예 대놓고 못믿겠다고 하니, 그런 리더가 좋은 리더일까?
그래서 요즘 현타가 온다. 실무진들이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게 아니라, 상사의 머릿속에 있는 답을 맞추는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마치, 여자가 남자에게 뭐가 미안한데? 라고 하는 수준이랄까. 상사가 하나하나 다 체크하려고 하니, 업무가 늘지 않을 순 없다. 알아야 답할 수 있고, 직접 발로 더 뛰어야 상사보다 더 많이 알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업무라는 게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고 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직원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력을 키워주는 게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숲을 보는 능력, 더 중요한 우선순위를 챙기고 나머지는 직원에게 맡기는 능력. 직원을 적재 적소에 활용하여 업무를 같이 하는 능력. 이런 것들이 직원이 어제 뭐했는지, 일을 상사가 원하는 A방식대로 제대로 하는지, 본인이 직접 실무를 뛰려고 한다던지, 직원의 보고를 못미더워하여 다른곳에 체크해보느라 정신이 없다던지, 본인은 이미 알고 있는데도 직원이 알고 있는지 일부러 재 확인한다던지. 등등. 이런 모습이 과연 내가 계속 따라야 할 리더의 모습인지, 난 그게 참 현타가 온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