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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Nov 11. 2022

따릉이를 타고 퇴근하다 토성을 보았습니다

날이 다소 선선해진 10월부터 지금까지 따릉이로 퇴근을 하고 있다. 

한강길을 따라 따릉이를 타고 가다 보면 지하철로 퇴근할 때 보다 

세상에 훨씬 더 많은 풍경이 존재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한 번은 어두컴컴한 저녁에 잔잔하게 불을 밝히고 

한강에 떠 있는 요트를 보았고,

(평일 저녁에 요트를 띄우고 여가를 보내는 사람은

어떤 인생의 소유자일까 생각했다) 

한 번은 라이딩하는 주인 백팩 밖으로 머리만 쏙 빼고 

바람을 쐬던 고글 쓴 말티즈를 보았다. 

고글 뒤로 지긋하게 감겨진 눈이 인상적이었다. 

도심지로 들어서면 

소개팅으로 처음 만나는 남녀가 인사를 나누던 어색한 순간도 보게 되고

('혹시, 현주씨...?', '아... 네' 이런 모먼트)  

미처 발견 못한 동네 가게들도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지난 화요일에도 어김없이 따릉이를 타고 퇴근을 했다. 

이제 해가 짧아져서 6시만 되어도 밖이 깜깜했다. 


그날은 개기월식이 있다고 들었기에 

달을 유심히 관찰했다. 

달의 밑부분이 평소와는 다른 모양으로 살짝 가려져 있었다. 


달 사진을 멀리서 찍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가며 

한창 라이딩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개기월식 달 보고 가세요~'라는 말을 했다.

나는 끼익~ 브레이크를 밟았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어둠 속 저만치서 주르륵 서 있는 망원경들이 보였고 

몇몇은 더 많은 망원경을 펼치려 삼각대 같은 걸 펼치고 있었다. 


주르륵 서 있는 각기 모양이 다른 망원경 앞에 따릉이를 세우니

보조해주시는 분이 '목성 보실래요?'라고 했다. 

렌즈에 눈을 대고 관찰하니 주황색 줄무늬가 난 목성이 둥그렇게 보였다. 


나는 망원경으로 행성을 

이다지도 가까이 그리고 정확히 관찰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마치 현미경으로 아주 생명체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 옆으로 가면 달을 볼 수 있다 했다. 


개기월식이 일어나고 있는 달 (망원경에 스마트폰 렌즈를 찍었다) 


'달이 무슨 그림자에 가려지는 거예요?'


'달은 지구의 그림자로 가려지는 거예요.

나중에 지구가 달을 완전히 가리면 

달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아주 붉은색으로 변해요. 

우리는 그걸 레드문이라고 하고요'


달 감상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누가 말했다 


'토성 보고 가세요~'


다른 행성을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보다 

토성을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이 훨씬 더 컸다. 


렌즈에 눈을 댔고

둥근 띠 안에 도동실 떠오른 작은 토성을 보았다. 

늘 펜던트나 목걸이 모양으로만 보았던 그 모양 그대로였다. 


망원경으로 관찰한 토성. 육안으로 보면 무늬가 보일만큼 또렷하게 보인다만 스마트폰으로 담을 수 있었던 건 이 정도


혹시 띠무늬가 살짝 보이는가? 저것보다 훨씬 또렷하게 볼 수 있었는데 사진으로 담을 수 없어 아쉽다


토성의 띠모양, 색깔까지 뚜렷하게 보였다. 

토성은 띠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목성과 달보다 훨씬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토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따뜻한 행복감이 서렸다. 


'토성이 지금 정말 예쁠 때에요.

지금 이 각도로 관찰할 수 있는 게 12년 만이라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운이 정말 좋은 거네요. 근데 도대체 토성을 어떻게 찾은 거예요? 

이 넓은 하늘에? 토성을 찾은 게 더 신기해요'


'저기 아파트 위에 떠있는 아주 작은 반짝이는 뭔가 보이시죠?'


'네 아주 작은 게 있네요' (병아리 눈곱만큼 작았다)


'저게 바로 토성이에요' 


하늘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만큼 밝게 반짝이는 건 

무조건 인공위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토성일 수도 있었다니 


따릉이를 타다가 토성을 보게 될 줄이야 

조금만 속도를 늦춰도 행복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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