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 Jan 14. 2021

팀장의 고독함에 대하여

네 알겠습니다. 네 그래요.  그런데....나는?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내게 팀장님은 까마득하게 느껴지면서도 친하게 지내고 싶고, 괜히 미우면서도 이쁨받고 싶은 그런 존재였다. 더불어, 일은 우리가 다 하니 얼마나 편할까 생각하기도 했고, 꽉 막힌 윗분들 앞에서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우 비겁해 라고 쑥덕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참으로 복합적인 감정을 주는 존재랄까.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내 연차는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고 이제 손가락 몇번만 세면 공포의 20년에 가까워 온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도 팀장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팀장이 되었다.. 라고 말하기는 싫다. 어려운 일에 도전도 많이 했고, 실패도 하고 가끔 성공도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버텼다.  성공하고 싶어 버텼다 라는 것보다, 일을 안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버텼다.  그리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텼다. 가끔 일이 잘 풀릴때의 성취감도 그렇지 않을때의 씁쓸함을 상쇄할만큼 달콤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연차는 쌓여가고,  나름대로는 인정도 받아 팀장 타이틀을 달고 몇년을 보내고 있다. 


아.. 그런데 참 쉽지 않다. 

팀장이라는 존재가 복합적인 감정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내 경험을 통해 알면서도, 내가 팀원들에게 '진짜 그런 존재이구나' 라는 것을 가끔 느끼는 순간 '헉' 숨이 막힌다. 그때부터 치열한 대화가 내부에서 이어진다. '케이. 그런거 알았잖아? 왜그러니 너. 철없게' '아냐.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나한테 그런 생각을 품는게 이상하지 않아?' '하! 케이. 니 자신을 돌이켜봐. 니가 팀원일때 어땠니? 팀장이 칭찬 열번해주다가 한번 지적질하면, 그 한번가지고 넌 거품을 물었잖니? 참나... ' '아....' '정신차려 케이. 참나. 기가막힌다 너?' 


우습게도, 이런 대화가 내 머리속에서 바삐 이뤄진다.  그리고 결론은, 다행히(?)도 모범적으로 마무리된다. 

'케이. 정신차려... 이제 알겠지? 내가 무슨말 하는지. 니가 주니어일때를 생각해보라니까?' 

'에효. 그래. 니 말이 맞다...피할수 없는거겠지.  그냥 내 할일을 하자. 그리고, 잘 하자..뭐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좀 서러워진다.  


우선, 윗분들의 요구에 숨이 막힌다.  '새로운거 해보세요. 근데 돈은 너무 많이 쓰지 말고' '어떻게든 되게 할 방법을 찾아보세요.' '목표는 무조건 높게 하세요. 이런 목표라면 왜 세웁니까?' 

가끔 눈 똥그랗게 뜨고 대들때도 있지만, 그것도 한순간 뿐.  대답은 항상 버젼을 달리한 '네'다. (네의 다른 버젼- 넵. 넵! 네넵~! 넵! 넵 알겠습니다! 등이 있다. 사실 '네'만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해서 무엇하리. 그냥 말할 에너지라도 아끼자..해서 최대한 '넵' 이라 대답한다. 


그리고 요즘엔 이런 요구가 종종 곁들여진다. 

'팀원들 정서관리 하세요. 요즘 세대들..알죠?' '팀원들 모티베이션 많이 주세요' '팀장이 관리를 해야 합니다.' '너무 무리하게 요구하지 마세요' 


아아아아.. 돌아버리겠다. 

일단, 팀원들 눈치를 보는건 default다. 피할수가 없다. 

여기에 워라벨이라는 키워드에 요즘 세대들의 정서관리가 팀장의 큰 의무로 더해지니 환장할 노릇이다.

워라벨,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바쁠때는 휘몰아칠 수 밖에 없고 그때는 어떻게든 해 나가야 하는것인데 그 때 마다 많은 불만과 불평들이 예상되니 가끔은 숨이 가쁘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라는 생각에 야근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새벽까지 일일일, 주말에도 일을 처리하기 일쑤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하더라도 알아주는 사람 크게 없다는걸.  그냥 '무조건 되야 하는 일' 을 하는 것 뿐, 그 아래에서 바쁘게 헤엄치는 나를 봐 줄 사람 없다는 걸.  


완벽하게 끼인 느낌이다.  위에서의 요구, 아래에서의 요구.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되게 하려고 바둥거리는 나를 인식할때마다 씁쓸해진다.  네! 넵! , 그리고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해결방안을 찾아볼께요. 이 수많은 답변 사이에 '나'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은 누가 있을까?  나는 누구에게 하소연 해야할까?  


아.. 고독하다. 


그치만 알고 있다. 이걸 또한 이겨내는 것도 내 능력이고, 어떻게든 버텨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냥 긴 한숨으로 한순간 달래볼 뿐이다. 


휴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훗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