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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ll Mar 04. 2023

[스크랩] 중요한 건 공정이 아냐

논란 속 <피지컬: 100>, 비웃을 수 없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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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은 거짓이 없다. 거짓 없는 땀에는 감동이 있다

[빅이슈] 오후 작가_중요한 건 공정이 아냐



[기사 발췌]

공정하게 불공정해진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가치는 점점 우리를 옭아맨다. 공정 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건 아마도 스스로가 별로 떳떳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학업도 일도 연애도 가족도 늘 내 능력 이상의 것을 얻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열심히 사는데 나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이 발에 차이게 많다. 나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훔치며 살아왔다. 그러니 공정이 내킬 리가 없지.


“체급,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최고의 피지컬을 가린다.” 최근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피지컬: 100>이 내건 모토다. 솔직히 처음 <피지컬:100>의 콘셉트를 들었을 때 ‘딱 별로’일 것 같았다. 젠더 문제를 포함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을 그 수많은 논란을 보지 않아도 본 것처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논란 때문에 오히려 이 프로그램을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흥미로운 건 공정을 가치로 내건 이 게임이 태생적으로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완전 공정하게 최고의 피지컬을 뽑는 방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신체의 발달 정도는 다르다. 같은 운동선수라도 종목에 따라 상체가 발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체가 발달한 이가 있고, 순간적인 파워나 스피드가 높은 사람도 있고, 지구력이 좋은 이도 있다.


제작진이 주장하는 ‘완벽한 신체’와는 거리가 멀다. 어차피 참가자들은 상위 1%로 신체를 단련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남은 건 시스템, 대진표, 컨디션. 무엇보다 대결 순간의 운이다. 게임 종목을 바꿀 필요도 없이 이 프로그램 안에서 벌어진 게임의 순서와 대진표가 조금만 바뀌었어도 우승자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자신들의 모토와는 달리 공정한 게임이 불가능함을 역설한다.


플레이 타임 내내 내 눈에 들어왔던 건 그 수많은 논란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의 땀이었다. 인터넷이나 언론에서 떠들던 논란은 생각보다 시시한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 땀이 너무 강력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모니터로 그 냄새와 열기가 뚫고 나올 것처럼 땀이 쏟아져 내린다. 가장 인상적인 경기는 열 개 팀 중에 최약체로 뽑히던 장은실 조가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조를 제친 ‘모래 나르기’ 게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최고의 신체를 뽑는다는 취지는 무너진다. 약한 참가자가 경기를 뒤집는 드라마 속에는, 어쩌면 우승했을지도 모르는 이가 ‘불공정’하게 떨어지는 과정이 포함된다. 공정을 원하는 시청자라면 당연히 화를 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게임에 불만을 표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공정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게임이든 인생이든 애초에 공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도 얼마든지 게임을, 그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 승자는 운이 좋은 사람이겠지만, 감동은 땀을 흘린 사람이 준다. 우리 모두 각자의 스토리와 배경을 가지고 산다. 당신이 아무리 땀을 흘려도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이 더 많다. 그리고 많은 경우 변명을 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뜨겁게 살아간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배신을 하는 것조차 너무 뜨거워서 누구도 함부로 비웃을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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