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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icial Kes Feb 14. 2023

그냥 난 아무 것도 아닌걸까?

날 그렇게 보지마

 새벽 한시 이십육분을 막 지나간다. 걱정을 하지말아야지 하지만 부모님의 눈빛을 보면 불안감이 쌓이고 마음이 흔들린다. 이제 직장을 때려치고 개발 공부를 하겠다고 한게 4개월 정도 지나갔다. 본격적으로 개발 공부한 건 2개월 정도 되었는데 뭔가 많이 공부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진전이 느껴지지 않아서 좀 불안하구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진짜 다시 재취업을 할 수 있을지 아님 쭉 백수 생활을 하게되는 건 아닌지 자다가 순간 순간 잠이 확 깬다. 이제 주변엔 결혼한 것 뿐만 아니라 애를 난 친구들도 점점 생기고 후배들도 취업도 많이 했다. 주변의 모습 뿐만 아니라 인터넷만 켜면 정말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그들에게도 걱정이 있고 고민이 있다는 걸 알지만 화면 속 모습들은 그저 부럽기만하다. 또 날 열등감에 빠지게 만든다. 


 작년 7월 난 퇴사를 결심했다. 1년 여간 다녀본 후 여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때려쳤다. 대표도 이상하고 회사의 미래도 안보이고 왜 이런 회사를 선택했을까 후회도 막심했다. 그러던 중 게임 회사다 보니 개발을 주축으로 일이 많이 돌아가 관심있게 보았는데, 뭔가 개발 공부를 하면 그래도 밝은 미래가 조금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케팅 쪽은 대기업이 아닌 이상 대행사를 들어가야하고 대행사는 낮은 급여와 파괴된 워라밸을 익히들어 그 쪽으로 커리어를 잡고 싶지 않았다. 따지고보면 이미 문과 대기업의 벽은 높고 이제는 나이도 들었고 사실 별 다른 길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 회사를 선택하기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는 커리어 전환을 마음 먹고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6개월 혹은 8개월까지는 충분히 버티겠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떠나왔다. 


나오고 나서 참 바쁘게 지냈다. 여행을 꼭 가고 싶었는데 ADsP 따야해서 여행도 못까고 스터디 카페를 끈어서 한 달을 다녔다. 갑자기 통계에다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니 뇌에 과부화가 왔다. 1년 내내 게임, 영어, 메일링만 하다보니 갑자기 공부하는게 좀 힘들었다. 눈에도 잘 안들어오는 걸 자리에 앉아서 내내 드다보니 그래도 좋은 결과로 합격했는데 문제는 이 자격증이 딱히 의미가 없다는 걸 난 그제서야 깨달았다. 물론 나중에 어떻게 나에게 돌아올지 모르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백날 자격증 따는 것보다 직접 코딩하지 못하면 소용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진짜 코딩의 세계로 들어갔다. 정작 코딩을 할 줄 모르는데 데이터 분석을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 잡고 다시 공부를 하려는데 왠걸 3년 내내 안걸렸던 코로나에 걸렸다.


11월 내내 코로나로 고생을 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아파본게 언제인지 정말 일주일 내내 죽는 줄 알았다. 난생 처음 오한을 겪었는데 진짜 두꺼운 이불에 패딩을 입지 않으면 추워서 버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식은땀이 줄줄나서 30분 정도 누워있으면 안에 있는 티가 다 젖었다. 일주일 동안 방안에 갖혀서 있다가 나왔는데 컨디션이 정말 바닥을 쳤다. 본 컨디션으로 돌아오기까지 한달은 걸린 것 같았다. 체력도 완전 바닥으로 땅을 쳤고 몇 일간 그냥 먹고 잠만 잤다. 회사를 다녔더라면 정말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기까지 오래걸렸을 것 같다. 오히려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코딩을 배우려고 12월 부트캠프를 알아보다가 하도 혹평이 많을 뿐더라 망해도 내 손으로 망하는게 낫겠다 싶어 독학을 시작했다. 후배가 소개해준 파이썬 강의를 들으면서 개발 공부를 시작했고 초반에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해가 바뀌고 프론트엔드로 진로를 정해 자바스크립트로 넘어왔다. 그런데 알면 알 수록 배울건 많고 진도는 안나가는데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많아서 질문하기도 어려웠다. 이렇게하면 될 것 같으면 에러메세지가 반겼고 저렇게 이렇게해도 안되서 아 포기!를 외쳤다가 다시 대가리 박고하는게 일상이었다. 2달을 지나면 그래도 뭔가 만들어볼 줄 알았는데 아직 뭘 만들 줄도 모르겠고 강의도 여전히 이해가 안되고 모르는 것이 투성이다. 이 때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 길이 맞는지 일주일간 불안감에 홍역을 치뤘다. 


 개발을 해보겠다는 마음이 일심으로 모이고 있는 와중 자꾸 왜 나만 이렇게 힘든건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또 늘 날 불행에 빠뜨렸던 생각. 늘 불행 속에서 살아왔던 기억과 왜 아직까지 불행 속에서 버텨가며 사는건지 내 스스로 나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정신차리고자 곰곰히 따져보니 나를 돌아보니 딱히 잘하는것도 없었다. 공부도 친구도 연애도 효도도 개발도..... 뭐 하나 딱 부러진게 없이 흘러가는데로 살아온 것 같았다. 주변을 보면 늘 방안에서 코드를 짜면서 2달 째 틀어박혀있는 내가 있고 그걸 보는 부모님에게 참 할 말이 없었다. 엄마에 대한 원망이 큰 나지만 딱히 이런 상황에서 나도 잘한 것은 없어 괜히 마두치기 힘들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면 큰소리라도 치겠겄만 꿈 속의 이야기였다. 항상 뭐 별 말 안하시는 아빠지만 아빠도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한바탕 나를 찔러대고 나서 정신차려보니 이상하게도 원점으로 돌아왔다. 내가 회사를 때려칠 때 처음했던 생각들이었다. 어차피 그 때로 돌아가도 또 때려칠 것이고 개발 공부를 할거라는 생각. 한 번 조금이라도 바꿔보자는 생각. 이 걸 해내보겠다는 생각. 그러면서 나도 좀 잘되보고 싶다는 생각. 온갖 생각이 들며 3개년 목표를 세웠다. 어차피 인생 내가 살고 걍 어차피 결혼은 물건너 간거니까 내 몸 하나나 보신하며 살자. 부모님 눈치도 뭐 집어치우고 내가 내 인생 책임지며 살면 되는거 아닌가. 나답지 않게 눈치를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중요한건 과거와의 단절. 큰 위업을 달성한 운동선수는 과거에 매이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이제는 과거를 떠올리지 않으려한다.


 일단 늘 끈기없게 포기했던 내가 꾸준하게 개발 공부해서 다시 취업을 하겠다는 생각만 하려고한다. 그리고 미국에 가보겠다는 생각으로 전념하고자한다. 세상은 너무 넓은데 다 못보고 죽기에는 너무 안타깝다. 사실 개발은 보험이다. 언제든 일할 수 있고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꿈꾸며. 무작정 아일랜드로 떠났던 그 때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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