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비워버리기로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길게 늘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생각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했던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이따금씩 생각 저 편으로 빠지곤 했고 때로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생각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생각을 멈추는 것을 잊어버린 듯했다. 멍을 때린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최근에 생각이 많으면 불안에 빠지기 쉽다는 유튜브 영상을 보았고 대학생 시절 지독하게도 불안했던 시기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는 무언가 답을 찾아야 하지만 어떤 답도 생각 안나는 상황에서 불안했고 그 불안때문에 어떤 일도 못할 정도로 조금 심각했던 것 같다. 스스로 나는 할 수 있다는 말을 되네이며 어렵사리 나를 끌고 가고 있었던 내 모습이 이 글을 쓰는 순간 그려진다. 지금은 그때처럼 심하게 불안을 겪지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할때면 할 수 있다는 말을 혼자서 육성으로 내뱉곤 한다.
그 짧은 영상을 보고 나는 그동안에 나에게 절대 선처럼 느껴졌던 계속 생각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 이따금씩 들었던 비워야 된다는 말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각을 계속한 들 답을 찾지 못했던 지난날들을 회고하고 나니 굳이 그렇게 애써 생각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되었다.
최근 출근길에 우연찮게 달과 6펜스가 눈에 들어와 출근하면서 다시 읽게 되었다. 예전 여자친구가 자기를 알려면 이 책을 읽어보라며 준 책이었다. 그 당시 너무 좋아했던 탓에 하루 만에 다 읽어버리고 여자친구는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본인의 예술을 찾아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인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고 헤어지는 순간까지 나는 왜 그 책을 읽으라고 나에게 준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 2~3년이 지난 뒤에 나는 그 짧은 시간들을 못내 아쉬워하며 그리워했던 시기를 보냈다.
오늘 다시 책을 펼쳐 읽어가던 중 작가에 대해 궁금해서 서머싯 몸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에 대한 설명 중 내 눈에 들어보는 부분이 있었는데 7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그녀가 왜 그 책을 나에게 건네주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뜨거운 여름날 정말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나에게 겁을 주던 기억과 조용한 방 안에서 긴장된 모습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일들이 기억 저 편에서 떠올랐다. 이제 깨달았지만 그녀는 차마 본인이 먼저 이야기 하기전에 책을 주며 내가 먼저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 당시 애써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머리 아파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이제는 우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