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을 생각하며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세 가지 비평서를 쓰면서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나,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셋,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되는가. 이를 통해 칸트가 도달하고자 했던 질문은 “인간은 무엇인가”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자연스레 이 질문의 형식을 빌어 디자인에 치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일었다.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 디자인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둘, 디자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셋, 디자인은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자연스레 마지막 질문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디자인 공부를 시작한 17년의 상황과 24년 현재의 상황은 무척 다르다. 당시의 내게 지금을 설명하면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변했고, 또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기후 위기는 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다가 왔으며, 세계는 다시 전쟁이 조금씩 좀먹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 속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해야하고, 또 무엇을 희망할 수 있을까?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그에 대한 한 가지 답으로 보인다. 사람들에게 대화의 장을 만들어 주고, 미래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가능성을 설명해주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 중 하나임을 역설한다.
저자인 던과 라비는 책이 만들어진 배경과 구성을 서문에서 설명하는데, 간략히 요약해보자. <A/B> 목록이라는 어떤 선언문에서 시작한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B의 목록을 살펴보며 여러 아이디어를 연결하고, 이 아이디어를 확장된 현대 디자인 개념에 포괄하며, 역사적인 연결 고리를 밝힌다. 책은 구체적인 디자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는데, 저자들의 작업이나 RCA 학생들의 작업을 예시로 활용한다. 책의 구성은 ‘개념 디자인conceptual design이란 무엇인가’라는 기본 설정에서 시작해, 과학과 기술의 새로운 발전의 의미를 탐구하는 비평적 수단으로서 개념 디자인의 활용을 살펴보고,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작업의 미학적 측면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사변하기’라는 개념과 사회 구상을 촉진하는 디자인의 역할을 조망한다.1)
자, 이제 처음에 던졌던 질문에 대해 저자의 관점으로 답해보자. 먼저, 디자인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미래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대안’이 된다.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미래지향적 성격을 띌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이 가깝든 멀든 미래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그것이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모든 대안은 확률과 선택의 문제니까. 그리고 자연스럽게 디자인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답할 수 있게 된다. 바로 디자인을 수단으로 활용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생각하게 해주는 것(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이다. 이런 형태의 디자인은 상상을 통해 성장하며, ‘난제wicked problems’로 불리는 문제에 새로운 관점을 불어넣고 대안적 삶의 방식에 대한 토론과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흘러가듯 상상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영감을 주는 것을 목표한다.2) 그렇다면 이런 디자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그것은 꿈이다. 풍요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인류가 디자인을 통해 사회를 꿈꿀 수 있음을 보이고 있다. 꿈은 미래에 위치해 있다. 우리는 디자인을 통해 꿈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이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갈 차례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던과 라비의 관점에 의하면) ‘제안’이다. 그것은 가능성을 그리고, 엄격한 분석과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상상력과 기발함, 도발적 특성을 잃지 않는 제안이어야 한다. 사회과학보다는 문학에 가깝고, 실용성보다는 상상력을 강조하며,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디자인 일반에 대한 이야기로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으로서는 충분한 요약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사회 꿈꾸기의 촉매제가 된다.3)
작금의 시대는 무척이나 복잡하고 다변화되어 있다.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는 1980년 그의 저서 <일상생활의 실천>4)에서 도시 속 평범한 거주자들은 권력자들의 ‘천상의 눈celestial eyes’으로 감시하려는 시도에 저항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던과 라비의 이야기과 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들은 미셸이 설명하는 저항에 해당하는 기예를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으로 풀어낸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면, 도무지 원인을 정확히 규명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이 산재해 있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할지 감도 오지 않는 거대한 문제들은 무력감을 느끼게까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순응하고 포기하고 외면한다면 그들은 우리가 깨닫기도 전에 우리를 집어 삼킬 것이다. 그에 대한 백신이자 치료약은 결국 끊임없는 사유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기여 중 많은 부분을 디자인이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디자인은 상상을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상상과 구현 방식 두 가지가 디자인을 구성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그 중 상상에 집중하고 있고, 그것이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미래에 대한 상상을 사회에 스며들게 하는 것을 목표한다. 모든 디자이너들이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에 몸을 던질 필요는 당연히 없지만, 그것이 주목하는 바를 같이 바라볼 필요는 있다고 느낀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혼란의 시대에 지속가능성을 꿈꾼다면 말이다.
1)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p.7
2) Ibid , p.16
3) Ibid, p.263
4) <일상생활의 실천>은 2024년 <일상의 발명>이라는 제목으로 국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