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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경 3시간전

리퀴드 폴리탄으로 모여드는
이방인들

워케이션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2022년 ‘아이 웨이웨이: 인간 미래’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전시를 감상하던 중 579벌의 옷과 

신발 32짝이 가지런히 전시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각양각색의 옷이 줄지어 걸려 있는 풍경을 빈티지 

마켓이 아닌 미술관에서 마주한다는 것은 낯선 경험이었다. 그 물건들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에 위치한 이도메니 난민 캠프에서 작가가 수거해온 것들이었다. 맥락을 알면 작품은 다르게 다가온다. 

‘빨래방(Laundromat)’이라는 제목의 설치작품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던 난민들의 

존재가 생생한 실체로 느껴진다.


아이웨이웨이 ‘빨래방(Laundromat)’. (저자 직접 촬영)

즉시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

각종 아트 비엔날레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화두인 ‘디아스포라(diaspora)’는 ‘흩뿌리거나 퍼뜨리는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다. 처음에는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진 유대인을 가리켰으나 오늘날에는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주 방식, 

이주 집단, 거주지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식민 지배를 겪었던 한국은 물론 

전 세계 곳곳에 아픈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있다. 

아이 웨이웨이의 ‘빨래방’에 전시된 옷가지들의 

주인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건너온 난민들이었다. 작가가 이도메니 난민 

캠프까지 갔던 것은 어떤 연유였을까? 2009년 

쓰촨 대지진 발생 당시 그는 사건의 축소 및 은폐를 시도하는 중국 당국의 대처 방식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부터 반체제 예술가로 낙인찍히며 

구속과 폭행, 가택연금을 당했다. 

2015년 국제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을 위해 압류당했던 여권을 돌려받고 독일로 출국한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유럽 곳곳을 떠돌면서 표현의 자유와 난민 문제를 지속해서 제기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 역시 디아스포라적 삶을 사는 셈이다. 


‘트렌드코리아 2024’에서 발표한 올해의 10대 소비 트렌드 중 하나가 ‘리퀴드 폴리탄’이다. 액체를 뜻하는 

‘리퀴드((liquid)’와 도시라는 의미의 ‘폴리탄(polytan)’이 합쳐진 용어로, 액체같이 유연하고 유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는 도시를 말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그의 저서 ‘액체현대’에서 현대 사회를 액체라는 은유로 설명한 데에서 가져온 개념이다. 바우만에 따르면 근대 이전은 고체 상태의 경직된 

사회였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식량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은 이방인, 타자, 침입자로써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다. 정주하는 삶은 우월하다고 여겨진 한편, 선량한 시민의 의무에서 벗어나서 경계를 마음대로 침범하는 낯선 존재는 달갑지 않은 눈길로 바라봤던 시절이었다. 견고하게 고착된 신분제 사회가 

허물어진 현대 사회는 바우만의 표현대로 결속 끊기, 회피, 손쉬운 도주, 절망에 찬 추격의 시대다. 자유라는 이름은 개인을 무한 경쟁 시장으로 내몬다. ‘신분’이 사라진 빈자리는 ‘계급’으로 채워진다. 개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만들어내는 부의 크기만큼 계급이 상승할지 아니면 하강할지가 정해진다는 믿음은 무한경쟁 

체계를 만들어낸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빠르게 치고 빠지는 기술이 현생을 잘 살기 위한 처세가 되었다. 소속감, 집단의 정체성보다 개인의 능력과 민첩한 대응능력이 더 중요한 사회로 접어든 것이다. 과거의 지배자는 영토를 

정복해서 공간을 하나씩 점령해 나가고 그곳을 요새화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시간을 지배하며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자가 우위에 있다. 비만과는 거리가 먼 날렵한 신체, 언제든지 재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운동화, 어디에서나 업무를 볼 수 있는 노트북, 스마트폰, 그리고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 소지품 등이

 즉시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문화적 징표가 된 것이다.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자신이 어디에서 일할지 선택하는 현대인을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르게 된 지는 이제 겨우 30여 년이 지났다. 난민, 망명자, 디아스포라로 불리는 이들에게서는 삶의 고난과 역경이 느껴지지만 디지털 노마드에게는 매끄러운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관계 인구와 정주 인구

오늘날 디지털 노마드는 ‘워케이션(Work+Vacation)’ 열풍의 선두에 선 주역이라 할 수 있다. 휴가지에서 

일하고 주말이나 퇴근 후에는 각자의 여가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하는 워케이션 문화는 코로나19로 인해 기업들이 사무실 출근 대신 재택근무 방식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일부 IT 기업과 스타트업이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숙소와 업무 공간을 지원하는 워케이션 제도를 경쟁적으로 시행해 화제가 되었다. 이제는 

언제 그랬다는 듯이 대부분의 직장인이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워케이션을 위한 공간과 프로그램에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는 중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인구 감소 위기에 몰린 

지역 경제를 되살릴 방안으로 워케이션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양양군은 서핑의 성지로 불리는 강원도 죽도 해변에 50여 개의 좌석과 회의실 등을 갖춘 워케이션 업무 공간인 웨이브웍스 양양을 오픈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관광객 규모가 거주 인구의 60배를 넘는 이 지역에 단기 관광객이 아닌 

장기 체류객을 늘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웨이브웍스 양양은 착착스튜디오 김대균 대표가 설계했다. (사진 촬영 김동규 / 제공 웨이브웍스)


웨이브웍스 양양의 굿즈들. (사진 촬영 타별사진관 / 제공 웨이브웍스)


성수기에 반짝 몰려들었다가 사라지는 관광객들과 달리 한 곳에 좀 더 오래 머무르며 일과 여가를 즐기는 

워케이셔너들을 보는 시선은 긍정적이다. 일본의 시민 활동가 다카하시 히로유키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은 한 지역과 계속해서 연결되면서 단순한 외지인이 아닌 관계 인구가 된 워케이셔너들이 훗날 해당 지역에 

둥지를 튼 정주 인구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기획자, 프리랜서 작가, 아티스트, 디자이너들이 

워케이션을 즐기는 이들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에게는 특정 장소에 메여 있기보다는 유동적인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도 이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소비할 만한 

트렌디한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제주의 워케이션 스폿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은 오피스 제주는 숙박시설과 

공유 오피스 공간을 갖춘 조천점과 사계점을 운영한다. 서울에서 이미 인지도를 구축한 국내 공유 오피스 

브랜드들도 속속 지역으로 진출했다. 맹그로브 고성과 로컬스티치 통영이 대표적 사례다. 


맹그로브 고성은 임팩트 디벨로퍼 엠지알브이(MGRV)가 지난해 오픈한 리모트 워커를 위한 공간이다. (사진 제공 맹그로브)


로컬스티치 통영은 2022년 강구안 항구 앞에 문을 열었다. 코리빙과 코워킹 공간을 결합한 이곳에서 지난 4월에는 카누 워케이션 카페가 운영되었다. (사진 제공 로컬스티치)


여러 브랜드들도 워케이션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는 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워크 앤 라이프스타일 가구 브랜드 데스커는 2022년 강원도 양양에 데스커 워케이션 센터를 짓고 

각종 오피스용 책상과 의자, 사무기기를 갖춘 채로 잠재 고객들이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웬만한 

팝업 스토어보다 홍보 효과가 더 큰 셈이다. 동서식품은 지난 4월부터 한 달여간 로컬스티치 서교점과 

통영점에 카누 워케이션 카페를 열어 다양한 카누 커피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캐논코리아도 워케이션을 

테마로 참가자를 모집해 제주도에서 3박 4일간 캐논 카메라와 렌즈로 촬영한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게시하는 ‘캐논 R케이션’ 이벤트를 진행한 바 있다.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데스커 워케이션 센터는 ‘워크 온 더 비치(WORK ON THE BEACH)’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워케이션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사진 제공 데스커)


워케이션을 테마로 한 각종 콘텐츠를 개발해 리퀴드 폴리탄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지역의 노력은 계속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역민을 늘리는 문제는 단기간 내에 해결될 수 없다. 워케이션을 즐기러 온 디지털 노마드는 물론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이주민을 포용력 있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옷 주인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아이 웨이웨이의 ‘빨래방’은 바로 그런 점에서 묵직한 울림을 준다. 




*본 글은 성남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아트뷰> 6~7월호에 실렸습니다.

https://www.artview.or.kr/post/june-tren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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