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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별 May 20. 2022

한 끼라도 제대로!

먹어봅니다!

'엄마 밥 나 배고파'

현관에서 신발 한 짝을 채 벗기도 전에 엄마를 애타게 부르면 어김없이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정갈한 한 끼가 차려진다. 침대 위에 가방을 훅 던지고 훌렁훌렁 옷을 갈아입고 호다닥 손을 씻고 안기만 하면 된다. 오분도 안되어 이것저것 반찬들에 국까지 차려 있는 엄마표 식탁은  내가 배고플 예정임을 알고 있는 듯 나의 입을 내 배를 그득그득 채울 수 있게 언제고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그땐  밥상이 얼마나 준비가 필요하고 정성이 들어간 것인지는 까맣게 잊은 채 언제나 건강한 한 끼를 제대로 먹고 다닌다는 집밥 부심만 상당했다. 


어느 날 친구와 아침밥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너는 아침 먹는 편이야? '

'응 나는 아침은 무조건 먹는 편이야 안 먹으면 힘이 안 나! 엄마가 늘 차려 주시거든’

'부럽다 나는 엄마가 차려준다고 해도 내가 싫다고 했거든 그래서 그런지 아침은  먹어 버릇하니깐  넘어가던데'


나는 결혼 전엔 아침은 무조건 먹는 거였다. 아침을 안 먹으면 하루 종일 일할 힘이 안 나는 것 같아 늘 한 숟가락이라도 입에 욱여넣고 갈 만큼 아침밥 러버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침엔 목구멍으로 뭘 넘기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바쁨의 극치를 달리는 출근 전쟁을 치르다 보니 어떠 날은 물 한 모금도 못 넘기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랬다. 나는 아침밥을 무조건 먹어야 했던 사람이 아니라 엄마가 차려주어서 먹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침밥을 안 먹다 보니 어느덧 라테 한잔으로 때워야 속이 편하고 아침밥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게 어색해져 아침밥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스타일이 되어 버렸다. 아침밥을 이제는 못먹는 사람이 되어버리다니 그땐  차려주는 엄마의 아침상이  그 정성이 얼마나 가득한 것인지도 모른 채 당연한 줄 알았던 거다. 아침에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저녁에 퇴근해서도 우리 딸 배고플세라 부랴 부랴 차려내는 엄마의 한상이 오전 내내 주방에서 조물 조물 투닥투닥하며 온종일을 만들어 낸 엄마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시간이 만들어낸 한 끼였다는 것을 몰랐었다. 아무 때고 열어도 꺼내먹을게 그득그득했으며 엄마손에서 차려지는 식탁은 정갈했고 반찬 하나도 허투르 놓지 않고 접시마다 색색이 균형을 맞춘 듯 하얀 식탁 위를 형형 색깔로 물들여놨던 엄마의 손끝에서  참 예쁘게도 차려진 그런 한 끼를 맛있게만 먹었지 그안에 깃든 정성은 몰라봤었다. 나는 그땐 그저 엄마라서 당연히 해주는 맛있는 밥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한끼를 준비하기 위해 엄마가 준비했을 시간과 그 식탁을 차려내는 정성이 가득 담겼다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무심한 딸내미 같으니라고...


그래도 신혼 초에는 소꿉놀이하듯 국하나를 떠도 새로 장만해 놓은 알록달록한 새 그릇이 마냥 이뻐서

식탁을 차려 낼 때도 엄마가 하듯 예쁘게 흉내라도 냈던 것 같은데  어느덧 결혼 7년 차 맞벌이 부부로 살다 보니 식탁 위에 반찬통 째 내어 놓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플레이팅이 뭡니까? 


계속 나와 남편은 바쁘다는 핑계로 밥은 그저  끼를 때우는 대충 먹고 치우기 바쁜 일종의 형식적인 식사가  많았던  같다. 부모님과 살면서는 그토록 정갈하고 때깔 있는 한상을 받아 놓고선 정작  손으로 만들어 내입으로 먹을 음식들에겐 꽤나 무심했다. 라면을 끓여도 냄비째 그대로 식탁에 놓고 먹는  기본 김치도 설거지하기 귀찮아 반찬통 채로 먹고 다시 냉장고 행, 어떤 요리를 해도 냄비째 프라이팬째 그대로 놓고 대충대충 한 끼를 때우는데 급급한 식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작 나를 위해 내손으로 준비한 식탁은 차림새 없는 참으로 볼품이 없어진 한 끼였다. 아차 싶었다.


그래서 얼마 전 남편과 진지하게 우리의 밥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플레이팅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한 끼라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져 보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대로 괜찮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우리는 반찬통 그대로 먹지 않기부터 실천하기로 했다. 그리고 거실 서랍장 어딘가에 켜켜이 쌓여 있는 꺼내 지도 않은 그릇들을 꺼내어 담아 먹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참 신기했다. 냉장고에 놓여있던 반찬들을 예쁜 접시에 담아내었을 뿐인데 한껏 엄마의 식탁처럼 음식들이 예뻐 보였다. 

정성이 깃든 한상 위에는 대충이라는 반찬은 애초에 없었던 거다. 내입이든 네입이든 누군가의 입에 들어갈 음식의 한입을 위해 끝까지 정성을 담아내던 엄마의 손끝을 이제야 제대로 가져왔다.


우리 집 식탁도 맛있어져 보기로 했다. 

오늘에서야 엄마 향기가 조금 베어나는 것 같다. 

맛있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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