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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겸손 Nov 17. 2017

3. 우에노 산책 (1)

걷다보니 해가 떨어졌다, 우에노온시공원에서의 하루

국립 서양미술관이 예상보다 너무 찾기 쉬웠다. 우에노공원 개찰구 방향에서 바로 우측! 위치도 확인이 됐겠다, 우에노 공원을 가볍게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 *우에노 역은 출구가 다수이고 그 면적이 상당하다. 쇼핑을 제외한 우에노 문화시설을 즐기려 한다면 우선 우에노공원 개찰구 방향으로 나오는 것이 편리하다.)  풍부한 광량과 넘실대는 초록빛에 기분이 설레었다. 우에노 공원의 정식 명칭은 우에노 온시 공원(上野恩賜公園)이다. 우에노 공원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온시에 해당하는 한자를 찾아보니 "임금이 내려 줌"으로 풀어쓰고 있었다. '흠.. 아무래도 천황과 관계 있나보군...' 생각하면서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공원 내 휴식 공간이 많고, 녹지 규모가 상당하기에 인근 지역 분들의 휴식처이자 여행자들의 관광지로 폭 넓게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우에노는 일찍이 에도시대의 유람지였다고 한다. 일찍이 우에노를 찾아 짙녹색 초목에 취하고, 사찰의 성대함에 감탄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리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이 정도의 대규모 단일 공원을 걷는 일은 처음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채 걷는 우에노 숲속은 역사의 흔적을 자연스레 품고 있었다. 근세부터 근대화의 과정 중에 일어난 사회구조의 변화, 새로운 권력의 형성 등이 우에노 공원의 건축물과 사물들을 통해 드러내고 있었다. 현대 도쿄를 만들어 낸 과정을 우에노 산보를 통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숲 속 비밀 아지트를 찾아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역사적 공간이었어라!






우에노는 에도 시대의 상징적인 지역이다. 1600년대 초 도쿠가와 막부는 우에노 일대를 불교와 주민 거점 지역으로 만들기 시작한하는데, 도쿠가와 가문과 밀접했던 대승정 덴카이가 현재의 우에노 공원 지대에 간에지를 창건 한 후, 일본인들의 두터운 신앙의 장소가 된다. 우에노 공원 일대는 간에이지와 그에 딸린 부속 시설로 그득했다고 한다. 에도 막부 말기, 메이지 정부와 막부 세력의 내전이 벌어진다. 우에노에서 일어난 보신 전쟁으로 인해 웅장한 부지의 대부분이 소실되는 불운을 맞는다. 이어 메이지 정부는 신불 분리 정책을 내세워 사원들을 폐쇄하는데, 간에이지 부지 역시 메이지 시대 몰수되면서 치명타를 받는다. 현재의 간에이지 부지는 1879년 이후 간에이지 부흥이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재건 된 것이다.   


보신전쟁이 끝난 후 간에이지 일대는 일본 제 1호 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부지는 일본 최초의 서양식 공원으로 바뀌어 1873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우에노 공원 일대의 초기 모습은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고 한다. 현재의 문화공간을 겸비한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은 1882년 경이라하는데! 사찰과 벚꽃놀이의 공원에서 박물관과 동물원, 미술관 등이 더해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는 도쿄 국립 박물관의 초대 관장 마치다 히사니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부분이 흥미로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관련 번역서가 있어 나중에 꼭 살펴보려한다...



그러다 우에노온시고엔(上野恩賜公遠)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24년 이라고! 역시 1924년 쇼와 천황의 결혼을 기념해 도쿄시에 우에노 공원 관리를 양도한 것을 계기로 '우에노온시고엔'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우에노 온시 공원이라는 이름 속에 근대화의 물결이 담겨있는 듯하다. 걷다보면 만나는 우에노 공원의 다른 시간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사물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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