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체가 남달리 발달한 이유
‘나는 상체는 말랑한 편인데, 왜 하체는 굵고 튼튼할까?’
제목을 보고 ‘이건 내 고민이다’ 라는 생각을 하신 분들이 많을 줄로 안다. 그렇다. 주변인들의 운동 혹은 다이어트에 대한 고민 아닌 고민들을 듣다 보면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질문 하나이기도 하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 고민은 여성의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매스미디어는 거의 기아 상태에 가까운 다리를 여성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꿀벅지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단어를 일반명사화 시킨 장본인인 애프터스쿨의 유이의 허벅지는 매우 건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실제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퍼져 보이는 카메라의 고질적 특성 때문에 그녀의 ‘꿀벅지’는 엉뚱하게도 ‘살집이 있지만 균형 잡힌 건강한 허벅지’ 쯤으로 이미지가 고착화되었다. 유이는 운동선수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TV에 출연하는 배우나 아이돌 가수 수준의 마른 하체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기아에 가까울 정도의 식이 통제, 하체에 근육 따위 전혀 생기지 않을 정도의 엄격한 운동 통제(!), 하이힐 착용으로 인한 착시, 카복시 주사,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지만 종아리 근육 퇴축술(!!)에 이르기까지 카메라 앞에서도 여전히 마른 다리를 유지하기 위해 가야 하는 길은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실천이 거의 불가능할 만큼 가혹하다. 만일 주변의 일반인이 이런 체형을 다년간 유지하고 있다면, 답은 둘 중 하나다. 축복받은 체질이거나, 본능을 억제하는 수준의 엄격한 자기 통제가 가능한 사람이다.
똑같이 평범한 수준으로 먹고, 똑같이 평범한 수준으로 움직이더라도 남성에 비해 여성은 쉽게 체지방이 축적된다. 애초에 유전적으로 그렇게 프로그래밍 된 탓이다. 여성의 몸은 선천적으로 지방을 쉽게 저장하는 편이다. 엉덩이와 가슴에 지방이 집중적으로 축적되는 것은 에스트로겐의 작용이다. 안정적인 출산과 수유를 위한 것이며 이는 대부분의 포유류에게서도 마찬가지의 경향을 보인다.
오랜 기간에 걸친 진화의 결과로,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정상적인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정 이상의 체지방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평균적으로 15% 이하로 체지방률이 내려갈 때 높은 확률로 생리가 끊기게 된다. 이렇다보니, 체지방을 일정 수치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한 본능이 폭발적 식욕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생리 기간 중 이상 식욕을 호소하는 케이스가 많은 것으로 볼 때, 연관이 아주 없다고 보기는 힘들 듯 하다.
다만 이런 본능을 비만 증상의 면죄부로 두기엔, 일정 이상의 비만증이 가져오는 건강의 실질적인 해악이 많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체지방률은 적정한 선에서 유지하는 것이 좋다. 게다가 매스미디어가 강요하다시피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몸의 기준이 너무나도 가혹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이를 마냥 외면하기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살을 빼 보려고 궁리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다. (실제 운동을 장기간 해 온 사람들보단, 운동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거나 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온다는 특징은 있지만-_- )
‘나는 상체는 말랑한 편인데, 하체가 굵고 튼튼해서 걱정이다. 왜 그럴까?’
사실 이 질문의 답은 뻔하지만, 묻는 사람을 눈 앞에 두고는 차마 진실을 이야기 해 줄수 없었다. 나도 사람이고, 내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감정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늘 두 세번 정도 돌려 직접적인 대답을 피해가곤 했지만, 그동안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공개한다.
상체가 말랑한 것은 당신이 평상시에 상체 근육을 쓰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며,
탄탄한 하체는 당신의 태산같던 체중을 버텨내기 위해 자연적으로 발달한 생존 근육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하지만 그 예외가 하필 당신의 케이스일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예외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예외라고 하는 것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평균에 한없이 가까울 것이 분명한 몸은 보통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투적으로 발달한 허벅지를 두고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라는 질문을 여기까지 읽어 내려온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 내려온 당신을 아프게 할 이야기를 꺼냈으니 미력하게나마 책임을 지겠다. 다음 번 글의 제목은 ‘허벅지를 이야기하기 위한 몇 가지 키워드’ 정도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