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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작가 역사트레킹 May 20. 2024

<재미난 스페인 4편> 세고비아

돌기둥이 빚어낸 절대음감!








* 수도교






스페인에 대해서 잘 모를 때였다. 당연히 스페인도 방문해 본 적이 없을 때였다. 그렇게 미디어를 통해서만 스페인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필자의 눈을 확 사로잡는 장소가 있었다. 정확히는 건축물이었는데 바로 세고비아의 수도교였다. 저 수도교를 꼭 보겠다고 다짐을 했었고, 결국에는 그 수도교를 직접 친견했다. 거기에 더해 수도교 앞 숙소에서 1박을 하기도 했다.  


평생 그곳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도시들이 있을 것이다. 영화 <카사블랑카> 때문에 유명해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희망봉이라고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등등... 필자에게도 그런 도시가 있었다. 이번에 소개할 세고비아(Segovia)가 바로 그곳이다. 


예전에 통기타가 하나 있었다. 지인한테 물려받은 것인데 아무리 조율해도 돌 긁어대는 소리가 났던 그런 통기타였다. 그래도 열심히 튕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유시인까지는 못되더라도 좋아하는 후배 앞에서 폼 좀 잡아볼 생각이었다. 그때 튕기던 기타가 바로 '세고비아 기타'였다. 그런 기억 때문에 세고비아는 필자에게 전혀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세고비아 기타는 유명 기타리스트인 안드레스 세고비아(Andres Segovia)의 이름을 따서 상품명으로 삼았다. 안드레스 세고비아는 다른 악기용으로 작곡된 음악들을 기타 연주에 적합하게 편곡을 하는 등 현대 기타 연주의 대가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안드레스 덕택에 '세고비아 기타'가 명성을 얻게 됐고, 그 상품명 덕분에 세고비아라는 도시가 우리 귀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세고비아에 가면 안드레아와 관련된 기타 박물관 같은 것이 있는 줄 알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도시 세고비아와 안드레 세고비아와는 별 관계가 없다. 그는 스페인 남부인 안달루시아 출신이고 데뷔도 안달루시아에서 했다. 그냥 그의 이름에 '세고비아'라는 도시 이름이 들어간 것뿐이다. <강철군화>의 저자 잭 런던처럼 그냥 사람 이름에 도시명이 포함된 것이다.


 수도교(aqueduct)를 품고 있는 세고비아는 마드리드에서 북쪽으로 약 60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래서 톨레도(Toledo)와 함께 마드리드 근교 여행지로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있다. 


처음 세고비아를 방문했을 때였다. 버스를 잘못타서 밤 늦게 터미널에 내렸다. 그냥 숙소를 잡으러 갈까하다가 바로 수도교로 향했다. 야경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와! 정말 환상적이네!"


수많은 아치들로 이루어진 수도교의 장엄함이 화려한 조명 빛을 받아 그 위용을 더하고 있었다. 미디어에서나 보던 로마시대 때의 수도교를, 그것도 조명에 휩싸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필자의 눈을 확 사로잡는 광경이었다. 






* 수도교의 야경






그런 장면에 매혹됐는지 상상력이 피어올랐다. 수도교의 아치에 리듬을 입혀본 것이다. 기둥을 타고 오르는 선율이 아치에서 곡선을 그린 후, 위층으로 올라가 3단 고음으로 울려퍼지는 그런 모습...


세고비아에 세고비아가 없다지만 필자에게는 수도교가 '절대음감'처럼 보였다. 시각의 청각화를 통한 음악 연상하기! 딱딱한 돌기둥을 보며 리듬감을 상상한 필자의 상상력이 과한 것일까? 돌기둥같은 돌아이? 


- 로마인들의 기술력이 집약된 거대한 수도교


기둥: 120개

아치: 167개

관로: 25*30*30cm

총길이: 16,220km(전체수로)

최고높이: 28.10m

교량구간: 728m


수도교의 스펙이다. 수도교는 로마시대인, 기원 후 1~2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당시 이베리아반도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로마인들은 곳곳에 식민도시를 세웠는데 세고비아도 그 중 하나였다. 정착지는 세워졌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세고비아는 넓은 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 터라 대규모로 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수원지와 거리가 멀었다. 수도교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로마인들은 외곽에 있는 프리오 강(Rio Frio)에서부터 중심부까지 수로(水路)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무려 16km에 달하는 수로가 만들어졌다.


수도교는 그 수로의 교량구간이다. 즉 16km 송수관 중 728m 정도가 아치형 다리 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로마인들은 왜 수도교라는 교량을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냥 수로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하물며 시멘트도 없던 시대에 그런 거대한 다리 구조물을 축조한다는 건 엄청난 공사였기 때문이다.






* 수도교






수도교를 잘 즐길 수 있는 곳은 아소구에호(Plaza del Azoguejo) 광장인데 그곳을 중심으로 양 옆쪽을 보면 왜 로마인들이 거대한 아치형 교각을 세웠는지 알 수 있다. 양 옆의 언덕으로 인해 광장은 협곡 형태를 띠게 된다.


이제껏 수로를 타고 온 물이 협곡으로 떨어지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 것이다. 협곡을 넘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인위적인 구조물을 연결하여 최종목적지까지 물을 도달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양편을 이으려고 하니 거대한 구조물이 나타났고, 교량 형식이니 아치가 놓여졌다. 또한 협곡의 높이가 있으니 복층까지 올려 졌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고비아의 수도교가 탄생됐던 것이고, 그 가치를 높이 사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기에 이른다.

 


- 악마가 만든 수도교?


옛날 옛적에 이 거대한 교량은 악마의 구조물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접착제도 없이 큰 돌조각들이 무지개를 그리며 놓여 있으니, 눈앞에서 보고도 그런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관련해서 전설이 하나 있다.


매일같이 물 주전자를 들고 비탈진 길을 오르내려야 했던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일이 고된 나머지 소녀는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 자신의 집까지 물길을 내주겠다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고,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기에 이른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소녀는 비극적인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열렬히 기도를 하게 된다.


그동안 악마는 수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토네이도가 발생하여 일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새벽닭이 울게 됐는데 그때 악마는 돌조각 하나만을 세우지 못한 채 건축물을 다 완성시킨 상태였다. 돌조각 하나 때문에 거래는 무산됐지만, 수도교는 온전히 그 자리에 생성됐고 소녀의 영혼도 빼앗기지 않게 됐다.


소녀는 마법 같았던 지난밤의 일을 세고비아 시민들에게 실토하게 됐고, 이에 사람들은 아치를 통과한 물은 유황 성분이 제거된 성수라고 여기며 새로운 건축물을 기쁘게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전설에도 내포되어 있듯이 옛날 사람들 입장에서는 거대한 수도교가 경외적인 존재였을지 모른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축조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수도교가 자신들의 식수를 공급해주고 있으니, 그 존립 자체를 인간 영역 밖에서 끌어오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도교를 두고 거대한 '마법덩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고비아 시민들은 19세기 중반까지 그 '마법덩어리'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 수로: 정수장 인근에서 찍었다. 교량 구간이 끝나면 수로가 지면과 가까이에 위치하게 된다. 






- 정수장 시설까지!


세고비아는 수도교를 중심으로 그 안쪽은 구시가지이고, 그 밖은 신시가지로 분류된다. 수로의 지상 구간은 신시가지쪽에 있다. 한 10분 정도를 걷다보니 정수장과 함께 드디어 지상구간이 나왔다. 전설에 유황이 제거됐다고 언급됐듯이 정수장도 수도교와 함께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정수는 이물질을 물에 침전하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정수장에는 심도가 깊은 물탱크를 만들었는데 그 물탱크에 모래나 황 같은 불순물들을 침전시키고, 깨끗한 윗물만 빠져나가는 식으로 정수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이다. 간단한 구조였지만 그들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상 구간의 수로는 말 그대로 수로였다. 돌을 깎아내고 그 위에 25*30*30cm 규격의 홈을 파 내 관로를 삼은 것이다. 수도교의 맨 위 부분도 그렇게 관로가 놓여 있다. 고대 로마인들의 건축기술에 다시 한 번 감탄을 했던 대목이었다.


지상 구간을 탐방하다 길을 잃고 말았다. 궁금했던 것들이 풀려나가는 재미에 빠져 있다 보니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덕분에 세고비아의 신시가지를 갈지(之)자로 마구마구 돌아다녔다. 그렇게 다니다보니 수로가 시작되는 산을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산은 구아다라마(Guadarrama)산이었는데 당시가 11월경이라서 그랬는지 산봉우리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아름다운 설봉이었다. 


전날에는 수도교에 상상력을 더했다면, 이날은 수도교를 더 면밀하게 탐구한 날이 됐다. 문화유적 앞에서 멋지게 사진을 찍는 것도 좋지만 그 문화유산에 상상력도 더해 보고, 더 꼼꼼히 관찰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아니겠나! 







* 구아다라마(Guadarrama)산: 구아다라마산에서 발원한 물이 수도교 위를 흘러갔다. 






* 세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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