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git Mar 28. 2022

완두싹의 공격자가 나타났다!

보리완두와 니무라헤이세이이찌고 / 3.24

육묘판이 모종들이 하나둘씩 싹을 밀어올리기 시작하더니, 이제 칸칸마다 초록색 손을 저요저요! 하고 있다. 진한 고동색, 축축한 흙속의 동그란 작은 씨앗이 초록의 여리고 귀여운 촉을 내는것도 신기하지만 제 몸보다 더 큰 줄기를 키우며 열심히 자라나고 있다는걸 생각하니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육묘판의 완두는 촉이 트고 싹을 내밀고 나서는 매일 씩씩하게 자란다. 며칠동안 아무런 미동도 없던  흙이 조금씩 위로 올라오는듯 하더니 조그마한 초록싹이 텄다. 싹이 트고 나서는 꽤 빠르게 자라나서 줄기가 2센티정도가 되었다. 재크와 콩나무처럼 자고 일어나면 일미터씩 자라 하늘을 뚫고 나가는건 아니지만, 매일 매일 자라고 있는게 확실히 보인다. 멀리서 보면 초록색 성냥개비를 흙에 꽂아둔것처럼 보이는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줄기에 조그마한 떡잎들이 부채처럼 접혀있다. 저 떡잎들이 짠~ 펴지고 나면 이제 무럭무럭 클 준비 완료! 텃밭으로 이사가야 하는 때가 오는것이다. 추운 날씨를 잘 버티는 완두. 그래서 늦가을에 심어도 되는 완두. 꽃도 예쁘고 잎도 예쁘고 덩굴손도 예쁜, 무엇하나 버릴게 없는 이름도 이쁜 완두.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은 내 완두.  

촉 끝을 뾰족하게, 잎들을 손가락모으듯 모아서 나오는 촉


노랗고 가벼운 햇살이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시간, 완두싹들도 햇볕이 반갑다고 손을 내민다. 햇빛과 완두싹이 만나 서로 손을 잡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하다. 햇빛에게서 어떤 에너지를 받아서 이렇게 열심히 크고 있는걸까? 적당히 따뜻해진 공기와 적당한 습도. 썬룸안의 월계수나무와 올리브나무도 잎이 반짝반짝한것을 보니 햇볕을 만나 기분이 좋은것 같다. 쭈구리고 앉아서 한참을 뿌듯한 얼굴로 완두싹을 바라보고 있으니 고양이들도 썬룸으로 어슬렁 어슬렁 나온다. 내 옆으로 와 앉아 완두싹을 구경하다가 육묘판 아래쪽의 물을 만져보기도 한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심심해졌는지 테이블 위로 올라가 날아가는 새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구경한다. 너무나 행복한 풍경, 다정한 시간이다.

물조리와 분무기를 한쪽으로 치워두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점심 준비를 하다가 썬룸을 슬쩍 봤는데 창가에서 바깥을 보고있던 치치와 뽀뽀가 보이지 않는다. 부엌으로 들어왔나? 하고 봐도 부엌에도 없다. 

설마설마… 완두를 괴롭히고 있는건 아니겠지..? 하며 육묘판 있는쪽으로 가보았더니 이녀석들! 두 녀석이 사이좋게 마주 앉아 완두싹을 하나씩 하나씩 뽑고 있다. 왠만하면 가까이서 뭘 같이 하는 녀석들이 아닌데 말썽을 피는 자리에 가보면 꼭 둘이 사이좋게 앉아서 협동작전을 펼친다.

“으아아~~ 이녀석들 그러면 안돼!!!”하고 달려가면서 큰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치치와 뽀뽀가 후다닥 숨어버린다. 이럴수가..육묘판위에 뿌리까지 나와버린 완두가 여러개다. 뿌리는 줄기보다 더 길고 통통하고 잔뿌리도 많이 나와있다. 고양이들이 말썽을 피운 바람에 뿌리까지 구경했다. 지금 이걸 기특해할때가 아니지, 혹시 완두줄기를 씹어버린거면, 죽었으면 어쩌지? 나의 일주일이 사라지는건데! 만약 다 죽은거라면! 게다가 지금 완두 싹내기엔 좀 늦은게 아닐까?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쭉쭉, 잘도 뽑아놨다. 뿌리는 줄기보다 훨씬 길다.


자세히 살펴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뽑히긴 했어도 씹어서 줄기를 부러뜨리진 않았다. 입으로 살짝 물어서 흙 밖으로 당기는 놀이가 꽤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어휴! 이놈자식들! 조용해서 사고 치고 있는줄 알았다!” 하며 고양이들에게 눈을 한번 흘기고 위험에 빠진 완두들을 빠르게 구조한다. 뿌리나 줄기가 부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흙안으로 넣어주고 흙을 살짝 더 덮어준다. 죽으면 안되는데.. 부암동 언니한테도 나눠줘야 하는데 머리가 복잡하다. 지금 다시 싹을 틔우기에 완두는 넘 늦었기 때문이다.

이 야옹이 악당 녀석들! 엉덩이를 팡팡 때려줄수도 없고.. 야속한 마음만 든다.  내가 완두싹을 구조하고 있으니 이녀석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눈을 반짝이며 구경하고 있다. 날 고생시키려고 일부러 이런거야? 이 애증의 털북숭이들… 


해결은 너희 몫이 아니라 이거지?

고양이들이 썬룸에서 더 놀 수 있도록 육묘판을 마당으로 내놓는다. 해가 좋은날은 이렇게 바깥 공기를 느끼게 해줘도 좋았는데, 사고치기전에 미리 바깥에 놔둘걸 하고 후회를 한다.  설마.. 고양이들이 완두싹을 뽑겠어? 하는  생각을 0.1초쯤 했는데 설마 하고 넘어갔다. 정말 할 줄은 몰랐다. 아니 어쩌면 예상했던것 같다. 

설마 설마 싶을때는 미리 사고를 예방하면 되는데, 그걸 안했다. 게을러서 되려 몸이 분주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