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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May 13. 2022

진도가 안나가는 그림

열심히 해도 안되는것 같은 날들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갈등한다. 작은 캔버스에 더 빨리 다작을 하고 싶은 마음과 지금처럼 큰 캔버스에 깊고 진하게 더 무겁고 오랫동안 여러가지를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것, 이 두 가지중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겠다. 내가 매일 그림을 하나씩 완성하고 올리고 아 너 정말 열심히 그리고 있구나! 하고 소식을 알리고 싶은데 지금 그림으론 매일이 뭐람, 일주일에 한번도 어림없을것 같다. 아니 지금 몇달째 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이 달라지고 있는것을 나만 안다. 매일 사진을 올린다면 똑같은걸 어둡기만 다르게 해서 올린다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작가들은 회사를 다니면서 투잡, 쓰리잡으로 다양한 예술활동을 하며 유명해지기까지 하는데, 나는 내 일을 잘 하지도 못하면서 완성도 빨리 못하는 뒤쳐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것 같아 두렵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다란 수영장 안에 가만히 서서 다른 사람들이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 물결의 파동을 받아내며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흔들거리며 서있는 느낌이다. 서있는건 맞나? 그냥 휘청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힘차게 앞서나가는것을 보며 휘청인다. 불안하기도 힘이 빠지기도 하는 이 상황이 정말 괜찮은가? 괜찮지않다.

SNS같은데 그림을 잘 올리는것도, 글을 대단히 잘 쓰는것도, 특별히 나를 홍보하거나 영향력있는 사람들을 만나 관계맺는것을 잘 하지 못하면서도 계속 이걸 붙들고 있는건 왜일까를 나에게 매일 질문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아서, 그림을 그릴때에 조금씩 무거워져가는 완성도에 대한 욕망이 좋아서, 결국 이 어려운걸 완성하는 순간의 허탈과 안심, 나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장되는 그 순간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림으로 칭찬받고 싶다. 그림으로 유명해지고 싶다. 그림이 사랑받으면 좋겠다. 이런 욕망이 그저 허무맹랑한 욕심이 아니라 나를 다음 계단으로 올려주는 힘이 되려면 나는 더 열심히 그리고 또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밑그림도 없는 허연 종이 캔버스, 실수를 하면 되돌릴수도 없다. 숨을 고르고 한선 한선 그어가며 형체를 만든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가장 안정적이고 차분해야한다. 잘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 내가 긋는 선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 잘 해내고 있다고 나를 다독이며 안심시킨다. 내 고양이를, 내 나무를 상상하고 그것을 그리면서도 내 마음 한편은 얕은 웅덩이처럼 찰박거린다. 작은 바람에도 물결이 생긴다. 찰박한 마음에 누가 돌이라도 하나 던지면 금새 말라버릴것 같다. 

지금 이 선이 맞는가? 이 위치가 맞는가? 결국 그려보면 그 위치와 그 모양이 틀리지 않았다는걸 알게 될거면서도 두려워한다.  어깨가 아파지면 뒤로 두발짝 물러나 그림을 보고 한숨을 한번 쉰다. 다시 제자리로 와서 캔버스를 채우는 작업, 어디까지가 옳은지 어느만큼이 적당한지도 모르면서 계속 계속 그림을 그린다. 어떤날은 신이 나고 어떤날은 바닥까지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오늘이 바로 그 바닥까지 떨어진 날이다. 

작업이 잘 되고 있는데도 두려운 마음, 너무 욕심이 커져서 그러는 것일까?



지금 작업하는 그림의 일부분, 어서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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