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병에 걸리는 병
놀면 병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다 나.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휴직하고 놀 줄 알았지' 매거진을 쭉 훑어보는데, 참 숱하게도 새로운 일을 하려고 했다가 놀려고 했다가 또 일에 집중하려고 했다가 잘 안되니까 좌절하고 이럴 거면 다시 놀자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어차피 집중해서 뭐 할 거 아니면 그냥 마음 편하게 놀면 되는데 그러질 못한다. 한마디로 병이다 병.
구매대행을 시작한 지 5개월쯤 됐을무렵 업무가 어느 정도 손에 익고 예상했던 수익구간에 접어들었다. 그랬더니 슬슬 또 무료함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는 우울감에 빠질 것 같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원래 하던 구매대행을 더 발전시켜서 2배, 3배 수익구조로 전환을 시키는 방법도 있었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후자를 택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구매대행을 시작한 게 여름이었고 이제 막 겨울이 찾아오던 시절이었다. 나는 중국에서 물건을 소싱해왔었는데, 많은 중국인들이 1~2월 사이 춘절(설날)을 맞아 약 한 달 정도 쉰다. 하는 수없이 놀아야 하는 바로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중국 구매대행을 계속하면 매년 1~2월을 쉬어야 할 것이다. 이때 안 놀고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을 경우 선택지는 다른 해외 소싱처를 늘리는 방법, 국내 소싱을 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런 것들은 꼭 지금 아니라 1년 뒤, 2년 뒤에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왠지 온라인 사업을 한번 해봤으니 오프라인 사업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오프라인 사업은 누군가 계속 상주해서 생산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싫어서 온라인 사업을 먼저 시작한 건데 다시 오프라인으로 돌아온다고? 최대한 관리에 시간 제약이 적은 업종을 택하고 싶었다. 마침 무인매장 창업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무인 편의점, 무인 아이스크림가게, 무인 밀키트전문점, 무인 과일가게, 무인 카페, 자판기 매장 등등. 그중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봤다.
애석하게도 없었다.
해본 적이 없으니 잘할지 못할지도 당연히 몰랐고, 그렇다 하더라도 하고 싶은 건 있을 줄 알았는데 왠지 다들 땡기지 않았다. 두려웠다. 상가를 구해서 시설이랑 인테리어까지 하고 입점했는데 상품은 안 팔리고 매달 월세만 나가서 손실이 나는 상황이 생길까봐 두려웠다. 실제로 코로나 때문에 월세가 밀려 보증금까지 다 까먹고 잠적하는 상인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렸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래도 그렇지 문 열고 집 밖으로 나가면 온 길가에 상점이 널렸는데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용기로 점포를 냈을까 신기했다. 그동안 월급쟁이로 살면서 리스크 테이킹이라고는 요만큼도 안 했던 게 이제야 실감이 났다. 나는 극도로 리스크를 회피하는 성향이었구나.
망해도 최대한 나한테 손실이 적은 게 뭘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이용해 보면 되지 않을까? 부동산 관련 지식을 팔아볼까? 컨설팅을 해볼까? 이게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긴 하지만 기존에 하고 있던 부동산 투자와 결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차원에서 부동산 관련 일을 일 순위로 선택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면 또 내가 가진 게 뭘까.
공실인 사무실이 있었다.
공실이라 매월 이자만 축내고 있던 사무실이 있었다. 이 사무실에서 뭔가를 해봐야겠다. 유동인구가 많은 상가도 아니고 1,2층도 아니고, 그래서 애매했던 이 사무실을 한번 이용해봐야겠다.
면적이 넓진 않았지만 천장이 높았고, 전창이 있었다. 신축건물이라 엘리베이터, 주차장, 에어컨, 난방 등등 여러 편의시설 조건도 좋았다.
그렇게 팔자에 없던 렌탈스튜디오를 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