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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Jul 24. 2022

몰입과 아무 글

잠시 이를 잃었다 하여 잇몸까지 잃었으랴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어디에라도 내 안의 것을 표현해내야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갑자기 노래를 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춤을 출 재간도 없고 그래서 선택하게 된 것이 바로 글이었다. 그 에너지가 응축된 글쓰기의 주제는 당시 몰두하고 있던 '부동산 투자'에 대한 것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부동산 투자 어떻게 하면 성공한다 류의 글은 아니었고, 투자를 하면서 느낀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글을 쌓아가다 보니 다른 이야기도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골자는 대부분 투자나 돈벌이, 돈벌이가 안 되는 것들과의 균형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요 며칠 그냥 아무 글이나 쓰고 있다. 아무 글이라고 하니깐 좀 그런데 이런 게 일상 에세이인가 싶기도 하고. 나는 요새 치열하게 회사 다니고 투자하고 육아하고 미친 24시간을 보내던 시절에 비하면 정말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휴직 이후 한동안 글쓰기에 집중이 안돼서 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존에 써오던 주제와 연관성 있는 글이 아니라 아무 글이나 써보자라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쓰다 보니 정말 아무 글이나 써졌다.



 휴직 이후 나는 여전히 소소한 사업을 이어가고 있고 또 상당 시간 일을 하고 있다. 회사를 다닐 때와 비교하면 돈벌이를 위해 들인 시간이 하루 8시간이었던 게 지금은 하루 2시간 정도로 줄었을 뿐, 남은 시간은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를 돌보는 일에 바치고 있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엔 집중해서 업무에 몰두하다가 휴식이 찾아왔을 , 그렇게 글감이 떠올랐었다. 퇴근길에  이야기는  써야지 하며 메모를 해둔 것이 수십수백 개는 된다. 아직도 글감 상자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하고 일부는 어느 정도 발전이 되었으나 발행되지 못한  조각 글 상태로 저장 중이다. 글감도 충분하고 회사생활을 통해 평소 몰입이 습관화되어 있었기에, 완전히 혼자가 되는 새벽 시간이면 순식간에 글을 술술 써나갈  있었다.





 그러나 집에 있다 보면 몰입이 어려워진다. 돌봄 노동의 어려움은 어느 순간에도 무언가에 집중해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떤 일을 조금 해볼라치면 바로 방해 요소가 생겨버려 결국 그냥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계속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한마디로 집중과 휴식, 과정과 결과 등을 반복하면서 퀘스트를 정복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은근한 상태로 노동의 끈에 매여있는, 끝이 없는 우주에서 그럴듯한 날갯짓을 하진 않지만 어떻게든 계속해서 허우적거리며 유영하는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집중과 휴식을 반복하는 삶에 적응해 있었어서 육아 시간을 더 못 견뎌한 것 같다. 공부할 땐 공부만 해야지 티비 보면서 공부를 하는 건 내 사전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랑 있을 땐 아이가 부모랑 계속해서 상호작용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혼자 잘 놀고 있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껏이지 돌봄에만 몰입하고 있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애가 일어난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며 육아에 몰입하면 아마도 아이도 부모도 금방 체력이 방전될 것이다.



 자연스레 글을 안 쓰게 되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글감은 있었지만 크게 발전되지 않은 상태로 부유했다. 대체로 일상 소재이기 때문에 길게 쓸 말도 없었고 그렇다고 여러 글감을 연결해서 쓰기에도 어려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문득 내가 너무 글에다 힘을 줘서 쓰려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쓰던 글을 이어서 써야 한다는 강박, 적어도 어느 정도의 분량은 써야 한다는 압박감. 어느  갑자기 이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글을 써야 해라는 의무감은 나만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사실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광활한 우주에   안되기도 하고.





 나는 에세이집을  읽지 않는 편인데,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이석원 작가의 '보통의 존재'라는 책을 무려   주고 사 왔다.  이런 글도 좋구나.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주기도 하고 스스로도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겠구나. 내친김에 지난 연말 동네 아는 엄마에게 선물 받은 에세이집도 다시 찾아 읽었다. 그땐 후루룩 읽고 그냥 이런 책도 있네 하고 덮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서 와 세상에 나 혼자만 이런 생각 하는 거 아니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글도 좋았구나. 그랬었구나.




 그래서 이제 파워 당당하게 진짜 아무 글이나 쓰려고 한다. 어차피 전문 작가도 아닌데 아무 글이나 아무렇게나 쓰면 어떤가.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되겠지. 그게  남일 필요도 없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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