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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red Feb 24. 2020

매일 뜀틀넘는 여자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잘 하자. 너 너무 잘하려고 해서 그렇게 맨날 힘든 거야."



초등학생 때 이미 170cm를 넘었다. 누가 봐도 신체적으로 우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두 번째로 두려워했던 수업시간은 체육이었다.(당연히 첫 번째는 수학이다.) 워낙 운동신경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키 때문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을 텐데.


혹시나 싶으셨던 건지, 어느 날 체육 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농구공을 던져보라고 했다. 결과는 에어볼. 보드에 맞지도, 골대에 맞지도 않았다. 승부욕은 많았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8단 뜀틀이 가관이었다. 친구들보다 한 뼘, 아니 그 이상 크니까 타이밍에 맞춰 스프링 보드만 잘 밟아도 수월하게 넘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번번이 스프링 보드 앞에서 머뭇거렸고 주저했고 망설였다. 그래서 탁! 밟지를 못하고 타닥! 소리를 내며 발구름의 타이밍을 놓쳤고 뜀틀에 배를 부딪치고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수업이 끝나고 나머지반 학생처럼 뜀틀 연습을 했다.


지금 나도 뜀틀을 넘는 중인 걸까.


전 회사에 28살 신입 카피가 들어왔었다. 요새는 남자들 중에도 빠르면 26살부터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은데, 여자가 28살 신입으로 들어왔으니 늦었다면 늦은 나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아이는 항상 조급해 보였다. 빨리 잘하고 싶어 했고 얼른 무언가를 해내고 싶어 했다.


카피를 곧잘 썼지만 그 아이가 내게 들고 오는 것은 정답이라고 할만한 것들이었다. 좀 더 넓게 다양하게 생각해볼 법도 한데 늘 내가 주는 가이드에서 맴돌았다. 신입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 아이가 그만큼 내가 주는 피드백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거였다. 어떻게 피드백을 줄까 고민하며 내뱉는 나의 작은 한숨에도 그 아이는 흔들렸다. 찰나와 같은 그 틈에서 그 아이는 또다시 해내지 못했다는, 잘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경험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아이를 불러서 이야기를 했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그러면서 내가 몇 년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그 아이에게 해줬다.


예전에 모셨던 CD님이 꼬꼬마 대리였을 때 일이었다. 회사에서 오며 가며 인사만 나누던 다른 팀 CD님과 우연히 같은 지하철을 타게 됐는데, 그분이 내리면서 그랬단다. "조급해하지 마. 여유를 가져." 그 당시에는 저분이 뭘 안다고, 나를 보면 얼마나 봤다고 저런 이야기를 할까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 CD님이 자신의 오래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나에게 똑같이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때는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게 됐다. 너무 애쓰지 말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이야기를 대물림하듯 후배에게 조언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 아이는 결국 6개월을 못 버티고 카피라이터를 그만뒀다. 벌써 서른이 됐겠다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이렇게 전 회사 신입 카피와 그보다 더 오래된 옛 CD의 이야기까지 구구절절 꺼내는 이유는, 내가 또다시 조급한 마음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새 회사로 온 지 3개월. 신입도 아니고, 5~6년 차 경력도 아니고, 10년이 넘는 경력에 전 회사에서 CD까지 했던 사람이라고 소문은 났으니, 다른 사람보다 잘해야 하고 뭘 해도 좋은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처음부터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잘하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아등바등 버티다가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다. 이사님과 CD님 앞에서 거의 오열을 했다. 계속 실수만 하는 것 같고 뭘 해도 엉망진창인 것 같다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말이다.(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울컥한다. 정말 갱년기도 아닌데 왜 이렇게 요새 눈물이 많아진 걸까.) 결국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눈물을 그쳤다.


후배들에게는 밥 사 먹이고 술 사 먹이면서 잘하고 있다고 다독일 줄 알면서 왜 스스로에게는 안 되는 걸까. 어째서 이토록 주변 시선을 의식하고 왜 정작 내 마음은 돌보지 못하는 걸까. 왜 매번 끝이 보이지 않는 허들과 뜀틀을 마주하는 기분인 걸까. 그것도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만큼 허겁지겁, 허둥지둥거리면서.


도대체 왜.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여유가 생길까. 10대 때 없던 여유가 30대에 갑자기 생기지 않은 것처럼, 40대가 되고 50대가 된다고 해서 여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렇게 뻣뻣하게 굴고 딱딱하게 굴면 부러지기도 쉬운데. 살면서 힘들 때마다 계속 부러졌다 붙었다를 반복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서른여섯. 정말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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