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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red May 22. 2020

결혼하는 이유


"도대체 왜 결혼이 하고 싶어?"



많은 이들에게 물었다. 왜 결혼을 결심했냐고. 물어본다고 해서, 이유를 듣는다고 해서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다짐할 것도 아니었는데 굳이 나는 왜 그렇게 물어봤을까.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 같은 거였을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하는 이유를 듣고 나면, 뭔가 나도 달라질 거라고 믿었을까.


"이 남자랑 살면 재밌을 것 같았어."

"사실 남자 친구가 밥 먹을 때 쩝쩝 소리를 냈거든? 그게 진짜 싫었어. 근데 어느 날 그게 단점처럼 느껴지지 않더라고."


이렇게도 일상적이고, 너무나도 간단한 것들이 인생에 몇 안 되는 중요한 이벤트의 이유가 되는 걸까.



"내 결혼의 증인이 되어줘."


작년 7월, 20년 지기 G에게 전화가 왔다. 결혼이라니. 결혼이라니. 이 녀석이 결혼이라니. 세상 결혼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친구가 갑자기 결혼이란다. 그리고 결혼할 때 증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분이 묘했다. 청첩장을 받기 위해 G와 예비 남편을 만났을 때도 똑같이 물었다. 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느냐고. G의 대답은 이랬다.


"오빠는 있는 그대로 내가 될 수 있게 해 줘."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처럼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굳이 한번 더 힘주어 말했다. 인상 좋다고,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결혼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해야 되는 걸까를 아직도 고민하는 내가 누군가의 결혼의 증인이 되어도 괜찮은 걸까.


그리고 난, 결혼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 H와 요즘 연애와 결혼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는 방법도, 방식도 모르겠다고. 우연히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건너편에 앉은 남자가 의식적으로 나를 계속 쳐다본다고 해도 그게 무슨 신호일지 알 수도 없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심지어 따로 연락이 와서 혹 하는 마음을 가졌는데 알고 보니 헛다리였다고 말이다.


촉이라는 게,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쌓은 빅데이터를 근간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쉽게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어째서 나의 촉은 늘 이 모양 이 꼴인 건가. 아직 데이터 수집이 덜 된 건가. 디스크 정리가 덜 된 걸까. 둘 다일까.


연애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또는 연락하는 일에 더 이상 적극적이지 않다. 모순이고 아이러니다. 되려 40대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만 50대부터는 좀 외로울 것 같다는 이야기만 주구장창 주고받는다. 그런데도 정말 내가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될까. 결혼하고 싶은 이유를, 누군가에게서 발견하게 될까.



G의 결혼식 당일. 성당 사무실에서 증인란에 빼곡하게 나의 신상을 적고 사인을 하는데 내적 웃음이 삐질삐질 새어 나왔다. 냉담자가 성당에서, 그것도 결혼하지 않은 내가 증인으로 사인을 하다니. 증인이라는 이유로 앞줄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결혼식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지금 G는 정말 행복하다는 걸.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보지 못한 얼굴이 신랑 옆에서 빛나고 있었다. 저런 거구나. 저 사람이 내 친구를 저렇게 만들어주고 있구나. 그래서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겠구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자리로 돌아와 기도했다. 저 둘이 오랫동안 행복하고 잘 살게 해 달라고. 아마도 하느님은 넌 꼭 이럴 때만 나 찾더라? 하시겠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기도했다.


무한도전에서 레전드 편으로 기억되는 영상 중에 하나가 조정 편이다. 콕스의 자리에 앉아 멤버들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힘들게 노를 저었는지 지켜본 정형돈의 한 마디. "내가 봤어. 진짜 잘했어." 그것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결혼식 때 봤던 G의 얼굴이 여전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왕 증인이 된 김에 옆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둘의 모습을 보고 "내가 봤다. 둘이 참 잘 사는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나도 결혼에 대한 믿음도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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