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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red Oct 10. 2020

나를 찾아줘

"보통 오면 다들 이렇게 울죠?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이미 3달쯤 되었다. 40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 해본 고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막상 실천에 옮기려고 하니 선뜻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예전에 비해서 인식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심리상담센터에 가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왜 망설인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길 잘했다.


상담 신청서를 쓰는 순간부터 눈물 버튼이 눌리기 시작한 것 같다.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적고 부모, 형제, 친구, 직장 상사와의 관계란을 차례대로 적어 내려가는데, 그게 뭐라고 그렇게 울컥울컥 했다. 그래서 괜히 쓰다 말고 친구들에게 벌써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요새 툭하면 우는 걸 친구들이 너무 잘 알고 있다.)


2평 남짓 되는 방에 들어서자 차분한 목소리의 선생님이 나를 반겼다. 인사를 하며 앉는 순간부터 이미 눈 밑까지 차오른 눈물은 도대체가 주체가 안됐다. 그래,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 책상 끝에 자연스럽게 놓인 티슈로 저절로 손이 갔다.


"속앓이를 많이 했나 보다. 괜찮아요. 지금 이렇게 눈물이 나고 그러잖아요. 왜 그런 것 같아요?"


그러게, 난 왜 우는 걸까. 내 상황도, 내 스트레스도 아직 제대로 듣지 못한 낯선 사람 앞에서 다 큰 어른이라는 나는 왜 이렇게 우는 걸까. 울기만 하고 답을 못 하다가 끝내 꺼낸 대답은 이거였다.


"속상해요."


속상하다는 한 문장으로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엔 부족했지만, 그 순간 떠오른 말은 속상하다는 거였다. 뭔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고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등 떠밀려 걸어 나가는 기분.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하나 둘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마다 선생님은 말했다.


"은선 씨 힘들었겠다. 그냥 봐도 힘든 상황인 같은데 은선 씨의 성향이 이런 버티기 힘든 같아요."


그 말에 또 펑펑.


사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슬럼프도 겪어봤는데 지금처럼 이렇게 바닥을 친 적은 없었다. 자신감도 잃었고 무기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왔고 의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런 부분에 대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서도 혹시나 투정처럼 들리지 않을까 내가 이 회사에 적응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라는 의심을 해왔었다.


"은선 씨는 정체성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에요. 중요한 걸 넘어서 집착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계속 나를 확인하기 위해서 애쓰면서 사는 사람인 거지. 그런데 평생 그렇게 살 수 없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돼요. 살면서 이렇게 저렇게 뒤죽박죽 섞여도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아요."


이런 말을 듣고 어떻게 안 울 수가 있나. 몇 번을 더 눈물을 닦아내고 코까지 풀고 난 다음에야 상담실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내가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다. 지금 내가 이렇게 망가진 건 그저 자신감을 잃어서 생긴 문제겠거니 했는데 회사에서 정체성이 희미해진다고 생각해서 흔들리는 거라니. 김은선=글 쓰는 사람, 평생 글 쓰는 걸로 살고 싶은 사람인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계속 지적을 받다 보니 무너지기 시작한 걸까.


어쩌면 소설을 쓰거나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내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하고 남들에게 확인받고 싶은 과정이겠구나 싶다. 다른 방식으로라도 계속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거다.


울어서 그런가 털어놔서 그런가 한결 후련하기는 하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검사와 상담이 진짜 나를, 내가 살아갈 방향성을 찾아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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