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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red Oct 26. 2020

행거가 있는 삶

"앞으로 행거가 없어도 되는 집으로 이사 가려고."



도대체 몇 번째인가. 또 행거가 무너졌다.


그 날따라 피로가 겹겹이 쌓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였다. 하긴, 요즘은 늘 그런 상태니 그 날이라고 유독 그랬겠냐만은. 애써 챙겨 온 자료도 펼쳐보지 않고 그대로 씻고 누우려고 했다. 그러다 어쩐지 침대 옆에 서 있는 행거가 기우뚱한 것 같아 살짝 건드렸는데, 그 순간 행거에 걸려있던 옷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아 이런 망할.


10년이 넘는 자취 기간 동안 행거가 쓰러진 건 처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래도 침대 옆에 세워놨고 완전하게 쓰러진 게 아니라 한쪽만 무너진 거라 다행이었다. 스무 살 무렵엔 자다가 그야말로 행거가 여러 번 나를 덮쳤다. 그때마다 있는 성질 없는 성질을 다 내고 낑낑거리며 행거를 올려 세웠다.


이 날씨에 땀이 났다. 한 손으로는 행거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행거에 걸려있는 수많은 옷들을 덜어냈다. 어떻게든 비뚤어진 균형을 맞춰보려고 했지만 이미 수명을 다 한 건지 고정조차 되지 않았다. 젠장. 포기.


결국에 수많은 옷들을 바닥에 패대기쳐놓고 행거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포기할 걸, 그걸 기어코 고쳐보겠다고 애쓴 나한테 짜증이 났다. 일단 자자. 엉망이 된 집안꼴을 더 이상 보기 싫어서 불을 꺼버렸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새로운 행거는 튼튼한 걸로 골랐다. 그리고 단출한 걸로. 옷가지를 몇 개 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버릴 건 좀 버리자, 언젠가 또 새 옷을 사고 행거가 흔들릴지언정 일단은 버리자 싶었다.


그때 생각했다. 다음번엔 절대 행거를 쓰지 않아도 되는 넓은 수납공간이 있는 큰 집으로 가자.


그리고 생각했다. 이 행거와 지금 내 마음이 똑같구나. 굳이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꾸역꾸역 매달아놓고 언젠가 무너질 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는 게 참 닮았구나.


저번에 썼던 이야기 중 심리상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선생님 앞에서 눈물이 솟구친다.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기분이다.


마음의 짐도, 스트레스도 이렇게 걷어내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쨌거나 진짜 행거도, 마음의 행거도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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