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퇴근했어요."
"밤늦게 퇴근하면 위험하겠네요."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벌써 5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는 그 말. 모두가 나에게 피곤하겠다며 위로할 때 위험하겠다며 걱정해준 그 사람.
소개팅을 앞두고 새삼스럽게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소개팅 예정남은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표정이 보이지도 않고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 카카오톡 메시지에서도 그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모든 사람들이 모든 직업에 대해 아는 건 아닐 테니까. 오늘은 언제 퇴근하는지, 오늘도 어제처럼 늦는 건지 궁금해하는 그 사람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줘야 할까 고민했다. 결국 12시쯤 퇴근할 것 같다고 하자 출근시간을 물었고, 나는 또 주 40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아 그럼 주 40시간 넘게 일하시는 거 아닌가요? 시간 외 수당 받으시는 거죠?"
예상하지 못했다. 시간 외 수당이라니. 그런 건 잊고 산 지 오래였다. 이 일이 좋아서 시작했고 이 일을 잘하고 싶어서 14년째 하는 중인데. 아, 물론 돈도 중요하지, 시간 외 수당도 중요하고.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아 어물쩍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받을 수 있을까?
새로 옮긴 회사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종종 있다. 내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팀원들을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천불이 난다. 도대체 일을 왜 이렇게 하지? 이건 왜 이렇게 안 하고, 왜 이렇게 느긋하지? 왜 내가 했던 얘기를 다시 하게 만들지? 왜? 왜? 왜? 그러다 자리에 앉아있기 어려울 만큼, 머릿속에 상대방에 대한 온갖 물음표와 분노의 느낌표가 가득 채워질 때면 어디로든 도피를 한다. 가장 가깝게는 여자 화장실, 멀게는 회사 근처 카페. 혼자 가둬두고 심호흡을 하는 거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사실이 아닌 감정을 쏟아내지 않기 위해서, 결국 너와 내가 다르고, 그래서 같은 마음일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설득시키기 위해서.
그나마 다행인 건, 그동안 나에게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는 거다. 이해시키고 싶어 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면서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의 오류들 말이다. 덕분에 지금은 앞뒤 없이 쏟아내는 분노를 적어도 한두 번쯤으로 줄일 수 있게 됐고, 혹시라도 뭔가 속에서 울컥하면 잠깐 그 자리를 떠서 생각을 정리할 여유 정도는 갖게 됐다. 그래도 성질머리는 여전하다. 아, 어제도 참을 걸. 왜 그랬을까.
사실, 밤늦게 퇴근하면 위험하겠다며 나를 걱정했던 전 남자 친구도 온전히 나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듯이 우주를 구하는 직업도 아닌, 그저 일개 직장인이자 한 회사의 직원일 뿐인 내가 그토록 일에 매달리는 게 이상하긴 했겠지. 입사 때 물어볼 가치조차 없는 퇴근 시간과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주말 스케줄, 선약이 있어도 뿌리치지 못하는 나의 태도. 쉽지 않았을 거다. 일 때문에 괴로워하고 일 때문에 툭하면 우는 나를 보며 그는 어땠을까.
어느 날 한번, 그는 나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며 대충 하면 안 되냐고 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문장들이 내 가슴에 콕콕 박혔던 순간. 그때도 지금처럼, 소개팅 예정남에게 했듯이 한 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근데, 욕심 아닐까. 나에게 있어 이 일을 너무 중요하고, 하루의 90%, 지금까지는 인생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이 일을 온전히 누군가에게 이해받기 원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그 이상을 넘어 지나친 요구 아닐까. 받아들이고 이해해주면 고마운 거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대차게 내치고 선을 그을 필요까지는 없는 거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또 우리의 팀원들에게 또 새로운 사람에게 이해받기를 원하겠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또 왜 이런 태도를 취하는지 어느 정도 아주 대략적으로라도 가늠해주기를 원하겠지. 그래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