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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May 16. 2024

아들아, 라떼는 말이야

오랫동안 잠자리 독서를 해오다 아이가 5학년이 된 올해부터는 잠자리 대화로 방향을 바꿨고, 잠자기 전 하나의 의식처럼 우리 둘은 이런저런 대화를 해오고 있다. 대화의 형식이 따로 있진 않지만, 대화의 주제는 항상 한결같다. 그것은 매번 아이가 얘기하고 싶어 하는 주제. 그 주제라는 것이 다방면으로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것도 부모의 욕심이다. 잊지 말자. 잠자리 대화의 목적은 주제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으니. 나른해진 상태에서 너와 나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의 의식이 잠자리 대화이니 말이다. 다행히 대화의 물꼬는 항상 아이가 튼다. 언제나 네가 관심 있어 하는 것들에 대해.


어제는 온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인지 날씨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와 나에게 이른 잠자리는 잠자기 전 의식을 좀 더 오래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는 내게 먼저 운을 띄웠다.


"엄마, '진지 먹었어요? 진지 잡수셨어요?' 뭐가 맞는 말이게? “


아이는 높임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섞어서 쓰는 게 재미있다며 종종 이야기하곤 했었다. 아이는 언제나 맞고 틀림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내게 내는 퀴즈들도 선택지는 맞고 틀림 두 가지. 아이는 문장의 맞고 틀림이 중요했겠지만, 나는 '진지'라는 말의 시대적 멸종 위기가 더 신경이 쓰여 잠자리에서 내 과거를 소환했다.


"엄마는 '진지'라는 말을 입에 붙여 살았었어. 엄마는 엄마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6학년 때까지 같이 살았었는데, 엄마 할아버지께 식사 때마다 그 말을 썼었지... 할아버지, 진지 잡수세요...라고 말이야"


그러고는 소위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방에 있다가도 할아버지께서 외출하신다 하면 제깍 나가서 '잘 다녀오세요'라고 고개 숙여 인사했고, 외출에서 돌아오신 할아버지께 또 제깍 나가서 고개 숙여 인사하며 예의를 지켰다고. 또 식사 때마다 "할아버지, 진지 잡수세요"는 내 단골 메뉴였다고 하면서. 그러곤 푸념했다. 진지를 드시던 진지를 먹으시던 진지를 잡수시던, 언어의 맞고 틀림이 뭐가 중요하냐고. 언어가 사멸 직전에 있는 게 엄마는 더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속으로는 사실 아이 나이즈음 과거의 나와 현재의 아이를 비교하면서 내 푸념이 더해지기도 했다.



핵가족에서 핵개인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과거의 우리 때와 비교하는 것은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생긴 것처럼 현세대에게 조롱 섞인 말을 듣기 일쑤다. 시대가 달라졌고, 시대의 변화 속도는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말속에 시간의 개념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마치 시간이 시대를 초월해 다른 밀도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전 시대의 시간과 다르게 현재의 시간 나아가 미래의 시간은 객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시간과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진지라는 말을 아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 같다. 실생활에서 쓰이는 것은 고사하고 그 언어가 사장되지 않게 아이들이 한 번쯤 들어는 봤게끔 알려줘야 하는 이 상황이 참 씁쓸하다.


비단 언어뿐 아니라 여타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은 이미 나와 한 몸이고 어디든 그것은 나와 함께한다. 심지어 화장실 볼 일을 볼 때도 함께 하는 가장 깊은 사이. 이것 없는 세상은 개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변했다. 사실 변화에는 명암이 모두 포함되어 있음에도 지금의 세상은 우리를 이 시대에 맞게 빠르게 변화하도록 종용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속도에 맞추지 않으면 이내 도태된다. 어릴 때 자주 썼던 말이지만 지금은 높임말 문법에나 나오는 '진지'라는 말처럼 변화하지 않으면 사멸될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아이가 스마트폰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 하던 어떤 선생님 한 분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원시 시대에서 온 것마냥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나는 이 스마트한 세상에서 더욱 멀어지고 싶었다. 내 할아버지께 진지 잡수세요,라고 하며 지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다들 그때를 살아봤잖아요. 그때도 살만했잖아요. 스마트하지 않아도 지혜로울 수 있던 그때를 알잖아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점차 뒤처져 사라지는 것들을 움켜쥐려 하는 것이 가끔은 편협한 아집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내가 먼저 앞서서 더 빠르게 달려가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도 나는 항상 달리기 시합에서 꼴등으로 겨우 겨우 결승점에 도착한다)

될 수 있으면 저 멀리 뒤처져서 느린 걸음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매 순간 아쉬워하며, 행복감을 향유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매일 밤 잠자리에서 소곤소곤 아이와 우리의 오늘을 나누면서, 그렇게.


아들아, 라떼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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