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협 Jan 11. 2023

異人   (이인)

-1-

진주 목걸이

현주는 목에 걸려있는 진주목걸이가 부담스러운 듯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남편 직장 상사의 부탁이긴 하지만 자기 취향도 아닌 목걸이를 걸고 밀수 아닌 밀수를 해야 하는 이 상황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애틀란타 공항, 입국심사대 한쪽 벽에는 오바마의 사진과 조지아 주지사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있었고 그 아래로 심사를 받기 위해 늘어선 줄이 끝이 없이 이어져 있었다. 

현주의 남편 동인은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줄과 시계를 보며 초조해했다. 

현주는 오랜 비행으로 부운 다리 때문에 구두가 자꾸만 조여 왔다.


싱글

지루한 입국심사대를 통과해 입국장 문을 나서자 반바지에 선글라스를 걸쳐 쓴 남자 상호아빠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방금 골프카트에서 내린 듯 완벽한 골프 복장이었다. 

동인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며 과장해서 미안해했고 상호아빠는 시답지 않은 농담을 곁들여 적당한 인사를 했다. 

현주는 동인이 시키는 대로 걸고 있던 진주목걸이를 상호아빠에게 건네주었다.  

상호아빠는 현주에게서 받은 목걸이를 보지도 않고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상호아빠의 차에는 예상대로 골프채가 실려 있었다. 

뒷자리에 실려 있던 골프채를 대충 밀어 놓고 현주가 차에 올랐다.      

“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 사는 게 너무 단순해서 목적도 다 비슷해요. 

있는 동안 싱글 한번치고 가면 그게 남는 거죠.”

상호아빠가 현주에게 물었다. 

“골프는 좀 치세요?”


잠자리

오펠리카로 가는 고속도로는 끔찍하게 무료했다. 

딱 무릎 높이까지 오는 잡풀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 광야를 뒤덮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땅 위로 가끔 움직이는 구름이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얼마나 더 달렸을 까... 알 수 없는 작물들이 심어져 있는 밭이 나왔다. 

눈에 보이는 모든 땅이 딱 한 가지 작물로 덮여 있었다. 

이때, 파란 하늘에 걸려있는 농업용 경비행기 한 대가 현주의 시선에 들어왔다. 

노란색의 비행기는 농작물들 위를 스치듯 낮게 날아가며 농약을 뿌리고는 다시 높게 솟아올라 크게 회전을 한 후 돌아와 정확한 위치에 농약을 뿌렸다. 

잠자리 같은 비행기는 바람을 타는 듯 하늘에 걸려 있다가 순간 바람을 밀고 나갔다. 

현주는 비행기를 한참 쳐다보다가 막 갈라지기 시작하는 매니큐어를 손톱으로 긁어 벗겨냈다. 


같은 시간, 준기는 스카프로 입과 코를 막고 경비행기를 몰고 있었다. 

비행기 안은 가솔린냄새와 농약냄새로 가득했다. 

엔진 소리가 좁은 비행기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창을 흔들고 있었다. 

준기의 라이방 선글라스에 강렬한 태양이 비쳐왔다. 

준기의 시선에 보이는 지평선은 활처럼 휘어있었다.  


Wlecome to Alabama 

앨라배마의 시작을 알리는 사인을 지난 지 한 시간쯤 달리자 불모의 땅 한가운데 서있는 거대한 한국계 자동차 공장이 현주의 시선에 들어왔다. 

그곳이 남편 동인의 직장이었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 안에서 쇠붙이로 된 자동차 골격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지나가면 277개의 로봇 팔이 정신없이 차를 조립해 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자동차들이 하루 1300대씩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동인이 잠깐 들려 인사나 하고 가자는 걸 상호아빠가 ‘그럴 것 없다고 ‘ 말렸다.


청담동

상호아빠의 차가 깨끗하게 정돈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적당히 안락해 보이는, 적당히 부유해 보이는 아파트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늘어서 있었다, 

상호아빠는 이 아파트 단지를 ‘청담동‘이라 불렀다. 

현주와 동인의 새 아파트는 마치 포르말린에서 막 꺼내놓은 것처럼 깨끗했다. 

회색 카펫바닥에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진 아파트에는 화장실이 방마다 있었다. 

텅 비어있는 두부토막 같은 아파트를 바라보며 현주가 말했다. 

“우리 가족이 쓰기엔 방이 좀 많네. “


스타벅스 클럽

앨라배마의 하늘은 유독 파랬다. 

사방을 둘러봐도 시선이 닿는 곳은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들뿐이었다. 

기름때를 잔뜩 먹은 2차선 도로가 교차하는 곳에 스타벅스가 하나가 서있었다. 

제법 큰 규모의 스타벅스 주차장에는 렉서스, 벤츠등 고급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앨라배마로 이사 온 다음날 동인 역시 현주에게 렉서스를 사주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상호아빠의 조언이었다고 했다.


현주는 딸 우주가 다닐 학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 스타벅스로 갔다.  

스타벅스 안에는 20대에서 50대까지 한국여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삼삼오오 따로 자리를 잡고 앉아있지만 이들은 모두 서로를 알고 있었다.

물론 그녀들은 현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낯선 여자들은 아닌 척하면서도 현주를 꾀 뚫어 보고 있었다.


여자들은 친절했다.

학교에는 어떤 선생이 좋다, 애들 과외는 누가 잘한다.

아이비리그를 가려면 봉사활동이 중요한데 회사에서 관련 서류들을 잘 만들어준다 등등..

현주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들 사이에 정수엄마가 있었다.

50대인 그녀의 모든 대화의 첫머리는 “그건 이런 거야..”였다.


윤 프로

자연스럽게 여자들의 대화는 윤 프로라는 골프선생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윤 프로는 넙치같이 생긴 외모지만 튼실한 엉덩이에 비율이 좋은 몸매를 가진 남자이고 스윙이 시원하다는 것.. 

그런데 그가 상호엄마와 바람이 났다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상호엄마의 정숙치 못함을 욕하면서도 그 누구도 윤 프로는 욕하지 않았다.


그때 상호엄마가 스타벅스로 들어왔다.

모든 여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모아졌다.

걸음소리.. 의자 끄는 소리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여자들은 경청했다.

그녀는 주문을 하고 화장실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분명 빈자리가 듬성듬성 있었지만 그녀는 화장실 앞에 앉았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마치 파도를 타듯 수군거림이 시작되었다.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상호엄마는 그날의 단죄를 받고 있었다.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여자들이 상호를 왕따 시키게 만들기 때문에 저렇게 한 번씩은 나타나서 벌을 받는 것이라고 누군가 알려주었다. 

현주의 시선이 상호엄마의 목에 걸려있는 진주목걸이에 고정되었다.


거인의 등

현주의 렉서스가 굴곡 없이 일자로 깔려있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자신을 아무개 목사라 소개하는 백인 진행자가 우리 지역사회가 또 정치가 얼마나 타락해 가고 있는지를 열을 내며 말하고 있었다.

그의 진한 남부사투리 때문인지 현주에게 그것은 ‘윙윙’ 거리는 백색 소음처럼 들렸다. 

자동차 통풍기에선 찬바람이 새 차 특유의 화학약품 냄새와 섞여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소음은 곧 대형병원 에어컨의 소음과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로 대체되었다.


현주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이미지 하나가 겹쳐졌다.

그것은 검시대위에 엎드려 누어진 한 구의 여자아이 시체였다.

현주가 차를 갓길에 멈춰 세웠다.

차문을 열자 마른 열기가 차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현주는 갓길을 따라 얼마간 걷다가 멈춰 서서 한참을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시선에 보이는 것은 하늘과 땅이 맞닿은 경계와 한 점에서 시작해 정확히 반대편의 한 점으로 사라지는 검은 고속도로 뿐이었다.

거인의 등에 난 면도칼상처 같은 그 막막함 어딘가에 현주가 서 있었다.     

현주가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신호가 약하게 깜빡깜빡거렸다. 

현주의 전화는 한참을 울리다가 동인의 메시지 함으로 연결됐다. 

“우리 여기에 집 지을까?”


작가의 이전글 영화 '아빠는 딸’ 마지막 비하인드 스토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