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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협 Jan 13. 2023

異人 (이인)

-3-

매화나무

며칠째 준기와 현주는 이 거인 등판 같은 벌판을 오갔다.

현장에 올 때마다 준기는 난감했다.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 하는 단순한 질문에 현주는 항상 묵묵부답이었다.

허허벌판에 집을 짓겠다는 건 그러다 쳐도 무슨 용도인지, 누가 살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집을 함부로 지었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퇴짜라도 놓으면 큰 손해이기 때문에 준기는 기다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준기와 현주는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사흘쯤 되던 날 준기가 트럭에 매화나무 묘목 하나를 싣고 왔다.

“나무를 먼저 한그루 먼저 심어봅시다.”

“내가 그랬어요. 나무를 심으니까 하고 싶은 것이 생기더라고요.”

준기가 삽으로 땅을 파고 나무를 심어 주었다.

나무를 심는 그의 셔츠가 말려 올라가자 옆구리에 새겨진 문신이 보였다.

라틴어로 쓰인 큼직한 글자들이 준기의 움직임에 따라 움틀 거렸다.    


벌판에 묘목 한 그루가 심겼다.  

현주는 그때서야 자신이 밟고 서 있는 땅이 온전히 자신의 것인 것처럼 느껴졌다.

현주가 주변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와서는 집의 밑그림을 그렸다.

준기는 현주를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흔적

며칠 후 현주가 매화나무가 심긴 벌판을 다시 찾았을 때,

준기가 인부들과 중장비들을 대기시키고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주가 차에서 내리자 준기가 그녀에게 삽을 건넸다.

“첫 삽은 원래 땅주인이 시작하는 거예요.”

현주는 그 삽을 받아 들고는 흙을 조금 떠서 파냈다.

그녀가 삽으로 낸 조그마한 흠집이 이 광활한 땅에 처음으로 남긴 흔적이었다.


포클레인이 그녀가 낸 흠집을 시작으로 땅을 파 나갔다.

땅에는 유독 바위가 많이 묻혀있었다.

어떤 것은 들어내고 어떤 것은 깨부수며 골을 내고 흙을 파냈다.

몇 천 년은 그 자리에 누워 있었을 커다란 바위가 중장비에 의해 끌려 나왔다.

현주는 바위가 누워있던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몇 천 년을 바위를 안고 있던 흔적이 이제는 놓쳐버린 바위의 모습을 간직한 채 누워 있었다.


36

현주는 오전 9시엔 항상 중학생인 딸아이 우주와 화상 통화를 하였다.

우주는 학기가 끝나는 대로 앨라배마로 오기로 되어있었다.

화상통화인데도 우주는 항상 카메라를 벽 쪽으로 돌려놓고는 절대로 카메라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현주가 묻는 말에 짧게 대꾸했다.

컴퓨터 화면으로 보이는 벽에는 36개의 반복된 문양이 있었다.

현주는 딸과의 대화할 때 이 문양을 세면서 그 숫자대로 질문을 했다.  

우주가 가장 잘 쓰는 말은 “그러든 말든 ‘이었다.

그러니까 약 스무 번의 “그러든 말든”을 듣고 나면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한국과 앨라배마의 시차는 15시간.

현주의 시간은 늦게 갔고 딸아이는 시차만큼 멀리 앞서 갔다.


쌍둥이

우주와의 대화는 비약하자면 한쪽 손을 묶고 서로에게 칼질을 하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현주는 그 기억 속을 필사적으로 헤집으며 버텨야 할 이유를 찾았다.

현주가 기억하는 온전한 우주의 모습은 대부분은 우영이가 죽기 전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현주에겐 또 다른 잔인한 일이었다.  


우주와 우영이는 쌍둥이였다.

죽은 우영이와 우주는 쌍둥이 중에서도 유난히 닮아 엄마인 현주도 가끔 헛갈렸다.

아이들은 퀴즈를 내듯이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르며 현주를 놀리곤 했다.

그렇게 닮은 아이 둘 중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아있었다.

한참을 기억을 더듬다 보면 현주는 지금도 아이들이 이름을 바꿔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그녀는 막다른 골목에 서있는 것 같았다.


우주와의 화상통화가 끝이 나면 현주는 공사 현장으로 나갔다.

너무나 뚜렷하게 살아 있는 우주 때문에 세상 어디에도 현주가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현주는 집을 짓는 것에 집착했고 거의 매일 공사장에 나가 서 있었다.


문샤이너(MOONSHINER)

문샤인(MOONSHINE).. 미국에서는 허가받지 않은 밀주를 그렇게 불렀다.

준기는 날마다 와서 우두커니 서있는 현주가 너무나 신경 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뜨거운 앨라배마의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서 있는 현주의 모습은 누가 봐도 위태로워 보였다.

준기가 집은 잘 지어 줄 테니 들어가라고 누차 말해도 현주는 듣지 않았다.

그는 현주의 행동이 지극히 한국적인 불신일 것이라 생각하니 은근히 짜증이 났다.


어느 날 갈렙이 공사현장으로 준기를 찾아왔다.

갈렙은 눈꼬리가 쳐진 선한 인상의 흑인이었다.

그는 밀주 제조업자로 주로 가축의 사료를 이용해 술을 만들었다.

1930년대에 금주법이 끝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시골에는 밀주를 제조하는 업자들이 많이 있었다.

아주 싼 가격에 술을 살 수 있는 곳이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밀주를 만들어 파는 것이 아이러니이지만 갈렙의 술은 빨리 취하고 그 취기가 오래가면서도 뭔가 중독성이 있는 향이 있어 아름아름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그 독특한 향을 내기 위해 갈렙이 술에 무엇을 집어넣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갈렙은 밀주가 들어있는 갤런들이 생수 통 두 개를 들고 왔다.

그는 그 중 하나의 뚜껑을 열어 준기에게 조금 따라 주었다.

준기는 갈렙이 건네는 밀주를 받아 마셨다.

갈렙이 현주를 보면서 누구냐고 물었고 준기는 이 집 주인이라고 했다.

“목이 말라 보이는데..”

갈렙이 현주를 보면서 농담처럼 말했다.


성인 남자 둘이서 나눠 마시면서 키득거릴 것은 술밖에 없기에 현주는 준기가 한심스러웠다.      

무허가 건물

공사가 중지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현주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인부들은 모두 떠나버리고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현주는 차를 몰아 준기의 집으로 갔다.

준기는 집 현관에 있는 야외용 소파에 누워 늘어지게 잠들어 있었다.

현주는 그 모습이 너무나 황당했다.

그녀는 현관에 올라서지 않고 준기를 불러 깨웠다.


일어난 준기가 고개만 들고는 현주를 바라보았다.

겨우 흥분을 가라앉힌 현주가 준기에게 물었다.

준기는 수도관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 벌판 자체가 배관 허가가 나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관행상 배관공사 허가가 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공사를 시작했음을 시인했다.

준기는 소파에 들어 누운 체 이야기를 했고 현주는 뻔뻔한 그의 태도에 화가 났다.

"어떻게 해야 돼요? 그 허가받으려면.."


현주는 시청으로 달려갔다.

시청 안은 강한 에어컨바람으로 싸늘했다.

그 안에서 현주는 난감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건축과를 찾았을 때 현주는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애썼다.

흥분한 탓인지 혀는 꼬이고 단어는 뒤죽박죽이었다.

시청직원은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그녀의 사정에 귀 기울일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현주는 그들이 야속했다.

한국 같으면 시원하게 소리라도 지르고 나올 텐데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시청 안의 공허함과 무기력함이 우영이 누워있던 그 시체실을 떠오르게 했다.

현주는 머리가 핑 돌면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준기는 이번 공사는 자기가 단단히 잘못 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뭘 짓고 싶은지도 모르는 여자의 의뢰를 맡은 것부터가 문제였다고 생각했다.

“빌어먹을 벌판에 집이라니.. “   

잔뜩 투덜거리면서도 준기는 시청을 향하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시청 안은 퇴근 준비에 여념이 없는 직원들과 마감 전에 업무를 보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준기가 시청으로 들어섰을 때 중앙 홀 한가운데 현주가 서 있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한 곳을 바라보는 그녀..

그녀는 보이지 않는 원형유리관 안에 갇혀있는 듯 세상과는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었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유리관에 위태롭게 기대어 서 있는 현주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시선은 분명 이국의 언어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순간 유리가 깨지면서 그녀가 무너져 내렸다.


발작

준기는 병원에서 처음으로 동인을 만났다.

준기가 현주의 가방을 뒤져 동인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낯선 남자에게서 듣는 아내의 소식을 굉장히 불편해했다.   

동인은 준기를 한번 쳐다보고는 인사도 없이 현주에게로 갔다.

물론 준기는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이상 머물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준기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때 동인이 준기를 불러 세웠다.

“잠깐 가지 말고 기다려요.”

물론 준기는 동인의 명령조의 말이 귀에 거슬렸다.


“아내가 가끔 발작을 합니다.”

한참 만에 나온 동인이 말했다.

그는 딸아이가 하나 있는 데 미국으로 오기 얼마 전에 죽었고 그로 인한 쇼크로 현주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고 덤덤하게 얘기했다.

지금 공사 중인 집은 딸아이 보험금으로 짓는 것이라고..

남 얘기하듯 덤덤히 말했다.

“우린 일 년쯤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집은... 알아서 마무리해 주세요. 어차피 거기에 살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허가에 문제가 있다고 들었어요... 대충 짖는 척을 하다 끝내세요.”


“당신은 뭐든 참 쉽게 이야기하는군요.”

준기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동인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병원을 나서면서 준기는 이상하게도 현주의 집을 제대로 지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발작처럼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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