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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협 Jan 16. 2023

異人   (이인)

-5-

악어사냥

악어사냥은 일 년에 딱 2주 동안 허락이 되었다.

준기가 악어사냥을 간다고 했을 때 현주는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준기 없이 3일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마침 그날은 동인이 디트로이트로 출장을 가는 날이었다.


현주는 준기와 갈렙, 그리고 그의 백인 친구 숀과 함께 악어사냥을 떠났다. 

차를 몰고 두 시간을 달리자 울창한 숲이 나왔다.

차 안에서 현주의 손은 준기의 허벅지 안쪽을 더듬고 있었다. 

숲 속에는 낡은 오두막집이 하나 있었다.

갈렙과 숀이 사냥준비를 하는 동안 준기와 현주는 짧은 섹스를 했다. 


사냥은 악어들이 잠든 밤에 시작되었다.

조그마한 무동력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갔다.

조용한 강을 플래시로 비추며 잠든 악어를 찾아다녔다.

잡벌레들이 밝은 빛을 따라 몰려들었다.

고요함 속에서 배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만 조용히 들려왔다.


준기가 악어의 등에 창을 꽃아 넣자 놀라 악어가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갔고 그 뒤를 주황색 부레가 따라갔다.

주황색 부레는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고 그 뒤를 준기와 친구들이 배를 저어 쫓아갔다. 

얼마간 따라가며 악어의 힘을 빼놓자 갈렙이 부레를 끌어올렸다.

딸려 올라온 악어가 긴 꼬리를 휘저으며 독이 잔뜩 오른 아가리를 벌렸다.

그때 숀이 악어의 머리통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축 늘어진 악어를 배로 끌어올리자 준기와 갈렙이 악어의 입에 두꺼운 테이프를 둘렀다.

그리고 발을 등 뒤로 꺾어 묶었다. 

악어사냥은 그렇게 끝이 났다.

사람의 의지는 불행히도 항상 약육강식의 최 상위에 존재한다.

현주는 악어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우주

공항에서 현주는 무척 불안해했다.

입국장의 문이 열릴 때마다 ‘쓰~윽‘ 자동문 소리가 증폭되어 들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주가 나타났다.

지나치게 짧은 핫팬츠에 나이에 걸맞지 않은 화장까지 하고 나타난 우주.. 

중학생 딸은 엄마를 본체만체하며 카트를 밀고 현주를 스쳐갔고 현주가 그 뒤를 따랐다.

차 안에서 두 사람의 시차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좀 쳐다보지 좀 말아줄래? “ 

우주의 첫마디였다.


우주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배정받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동인이 돌아왔을 때 처음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마지못해 저녁식탁에 앉았다.

현주는 그동안 알아본 학교이야기를 꺼냈고 우주는 ‘그러든지’로 짧게 대꾸했다.

우주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유일하게 자신과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는 한국친구들과 문자질을 했다. 

사단은 동인이 우주의 핸드폰을 건드렸을 때 일어났다.

우주는 독기를 잔뜩 품은 눈으로 현주와 동인을 쳐다보며 대들었다.

현주를 쏘아보던 우주는 입안에 침을 잔뜩 모아 국그릇에 뱉어버렸다.

그리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주는 준기 생각을 했고 동인은 박살 나는 차 안을 뒹굴 던 더미를 떠올렸다.


동인은 잠들어 있었고 우주의 방에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소리가 새어 나왔다.

현주는 온몸이 화끈거려 도저히 잠이 들 수 없었다.

방마다 설치된 에어컨이 나지막한 휘파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차가운 기운이 현주의 몸에 닿아오자 화끈거리는 가슴에 기름을 붓는 것 같았다.  


집에서 몰래 뛰쳐나온 현주는 차를 몰고 준기에게 달려갔다.

집에는 불이 모두 꺼져있었다.

현주는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렸지만 안에선 대꾸가 없었고 그의 전화 역시 꺼져있었다.

그녀는 돌로 창을 깨고 준기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을 모두 뒤지고 다녔지만 그는 없었다.

주인이 없는 집에서 현주는 옷을 벗어던졌다. 

빈집의 공허한 공기만이 그녀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준기의 침대에서 현주는 자위를 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불러왔고.. 

그 공허함 속에서 현주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준기의 침대 시트를 찢고 물건들을 던졌다.

그때 준기가 뛰어 들어왔다.

그의 시선에 난장판이 되어버린 집과 벌거벗은 현주가 들어왔다.

준기를 보자 현주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현주는 준기를 끌어안았다. 

준기도 그녀를 안아 주었다. 현주의 떨림이 가슴으로 전해 졌다. 

“내가 어떻게 해 줄까?”

“난 네가 내 개였으면 좋겠어.. 손짓하면 오고 묶어 놓으면 기다릴 줄 아는 개.”

“그럼 영원히 너랑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그럼.. 네 개가 돼 줄게.”


기어 다니는 짐승

스타벅스 클럽에서 현주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커피는 식은 지 오래였다. 

주변에 앉은 여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윙윙거리고 있었다.  

여자들이 묻는 말에 가끔 되물어 대답했다.


그때 상호엄마가 들어왔다.

그녀는 늘 그렇듯 커피를 시키고는 화장실 앞자리에 앉았고 늘 그렇듯 여자들은 소곤댔다. 

그녀의 목에 걸린 진주목걸이를 바라보던 현주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현주는 얼떨결에 마주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뒤 현주는 준기에게 문자를 했다.

“네가 미치게 필요해.”


스타벅스 앞 도로는 늘 한산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가 지나갈 때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좁은 바닥이라 혹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인기척에 민감했다.


준기의 경비행기가 나타난 건 현주가 전화한 지 5분 만이었다.

공중에서 좌우로 나풀거리던 비행기가 점점 지표면에 가까워지더니 

도로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스타벅스 주차장으로 들어서서 멈췄다.

비행기 엔진의 소음이 카페 유리창을 흔들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준기가 안으로 들어오고 현주가 그를 따라 비행기에 오르고 사라질 때까지 여자들은 입을 벌리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비행기는 착륙했던 반대방향으로 미끄러지듯 날아가 버렸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앨라배마는 지면에서 보는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멀리 제법 높은 산들도 보이고 그 너머 울창한 나무숲도 보였다. 

작은 도시도 보이고 대지를 가로지르는 강도 보였다.


‘어쩌면 사람은 기어 다니는 짐승이다.’라고 현주는 생각했다.

비행기 엔진의 굉음 속에서 현주는 처음으로 허리를 펴고 선 것 같았다.


쌍둥이

교문 앞에는 고급승용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요새 바람 펴?..” 

“골고루 한다. 진짜.”

현주의 차에 올라타며 우주가 한 말이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우주가 한 말은 그게 전부였다.

현주는 그 화끈거리는 이야기를 누구에게, 어떻게 들었는지 묻지 않았다. 

단지 우주가 던진 말이 현주에게는 방어할 틈도 주지 않고 모든 것을 하찮게 만들어버린 것이 화가 났다. 


“나도 네가 참 불편해.”

집에 돌아온 현주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는 우주에게 나지막이 내뱉었다. 

비루하지만 그것이 현주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용기였다.

“나도 알아.”

우주가 돌아서면서 말했다.

“엄마 눈빛이 어떤지 알아? 꼭 내 어깨에 죽은 우영이가 올라타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이야.”

“그게 얼마나 사람기분을 더럽게 하는지 알아?”

현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때 동인이 들어왔지만 우주는 독설을 멈추지 않았다.

“왜 니들이 죽이고서 왜 나한테 지랄인데?”

“니들 눈빛을 보면 우영이가 내 몸속에 귀신처럼 착 달라붙어있는 것 같다고” 

“이 얼굴을 다 찢어버리고 싶어!”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우영이를 꼭 닮은 우주를 볼 때마다 밀려오는 공허한 고통을 현주는 감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씨발 쳐다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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