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아침 겸 점심은 아보카도와 고구마, 방울토마토, 사과 그리고 따뜻한 녹차.
느지막이 토리가 나를 깨우고, 나는 토리 화장실을 치운 후 토리의 늦은 아침을 챙겨주고
역시나 늦은 나의 아침을 차린다.
오늘은 별다른 준비가 필요한 건 없지만, 여전히 아보카도 씨를 빼는 것은 어렵다.
칼로 팍 찍어서 살짝 돌리면 빠지는 것 아니었나?
예전엔 잘 뺀 적도 있는 것 같은데, 왜 어려울까?
나는 무서운 것이 너무 많다.
칼도 무섭고, 칼로 씨를 살짝 내리치는 것도 무섭고, 다른 쪽 한 손에 아보카도 반쪽을 안전하게 들고 있는 것도 무섭다.
차가 갑자기 내 옆을 쌩 지나가는 것도 무섭고, 갑자기 튀어나온 오토바이도 무섭다.
도로 위, 어딘가에서 빵빵 거리는 소리가 나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무섭다.
버스의 방귀 소리도 무섭다.
어두운 밤 뒤에서 다가오는 그림자도 무섭다.
옆에 지나가던 모르는 아저씨의 고함 소리도 무섭다.
누군가에게 혼나는 것도 무섭다.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무섭다.
받기 싫은 전화를 받는 것도 하는 것도 무섭다.
콩상의 무표정과 차가운 목소리도 무섭다.
새로운 시작, 바뀐 환경, 처음 만나는 어려운 사람, 불편한 공간 안에 있는 것도 무섭다.
언제부터 이런 많은 것들이 무서웠나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내내 그랬던 것 같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기 전,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내 번호를 부를 때, 음악 실기 시험을 보기 전에 늘 무서웠다.
집 전화벨이 울릴 때, 엄마 아빠가 싸울 때, 아빠가 소리 지를 때도 늘 무서웠다.
이런 것들을 무서워하던 아이는 현재 아보카도 씨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잘 빠지지 않아 우격다짐으로 씨를 빼내고 나면
예뻤던 아보카도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부서지고 으깨진 못난 아보카도만 남아있다.
먹기 좋게만 자르고 소금, 올리브유, 페퍼론치노 치고 나서 먹는다.
고구마, 사과, 방울토마토까지 다 먹으니 꽤 배가 부르다.
그러고 나서 녹차를 한 번 더 우린다.
녹차까지 다 마시고 나니 아보카도 씨는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느껴진다.
다음번엔 여전히 무섭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