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oosun Mar 31. 2020

화성에서 온 공공, 금성에서 온 민간

민관협력 도시재생


공민연계 도시재생을 위한 변화

도시재생사업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행정의 지원 없이도 자생적으로 지역경제와 공동체가 작동하는 지속가능한 지역을 만드는 일이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세수가 감소하며 행정의 역할이 제한되는 현대사회에서 도시재생 사업의 새로운 동력은 “민간”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개발 여력이 충분했던 성장기 도시에서 행정의 역할은 과도한 민간의 개발 속도를 적정히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민간의 개발 여력이 현저하게 감소하며 활력과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는 쇠퇴기 도시에서 행정의 역할은 오히려 민간의 창의력과 자금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민간의 장점을 적극 살리면서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는 방법이 현대 도시의 행정부문에서 필요한 역할이다. 이는 도시재생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민간의 잠재력을 공공 도시재생 정책에 도입하는 것을 공민연계 도시재생이라 부른다.  공민연계 도시재생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행정주도의 도시정책은 물론 시민사회에서 이끌어 온 마을만들기 분야에도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공민연계 도시재생은 흡사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와 여자 사이 관계를 다룬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같은 듯 전혀 다른 공공과 민간의 생리를 모두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같은 목적으로 움직이지만 상호 간의 작동원리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공공이 주도하던 도시개발모형이나, 시민사회 영역이 주도하던 마을만들기모형과도 조금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 민간에게 공유지의 소유권과 사업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민영화나 행정의 부담이 높은 PFI사업과 달리 공민연계 도시재생은 공공과 민간이 사업의 리스크를 공유하고 민간의 사고방식을 도입한 공공과 공공성을 유지하는 민간이 파트너십으로 지역재생을 위해 협업하는 모델이다. 공공과 민간을 연결하는 공민연계형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주민참여, 중간지원조직, 도시재생 교육, 행정시스템, 실행 주체, 연구방향 등 기존 체재의 크고 작은 재편이 필요하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한국형 도시재생사업인 도시재생뉴딜에서 다양한 접근방법 중 하나로 공민연계 도시재생을 적용할 때 고려해야 할 부분과 군산시 영화시장의 도입 방안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공민연계형 도시재생은 이제 막 도입된 개념이며 여전히 다듬어가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향후에도 폭넓은 시범사업과 실증형 연구가 따라야 할 것이다.


중간지원조직의 재편: 자립형 지역관리회사를 통한 지속 가능한 지원구조

도시재생뉴딜에서 도시재생지원센터 등의 중간지원조직 설치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현장 도시재생지원센터, 지자체 도시재생지원센터, 광역 도시재생지원센터, 국가 도시재생지원 기구 등 다양한 위계의 중간지원조직이 대다수의 지역에 설치되고 있다. 중간지원조직의 주요 역할은 주민교육, 주민참여사업 운영, 주민 의견수렴, 주체 간 갈등 중재 등이다. 현재 중간지원조직의 형태는 직영, 재단, 위탁의 형태로 예산의 출처가 세금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행정의 직접적인 관리가 발생한다. 또한 행정의 제도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자유도, 속도가 떨어진다. 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중간지원조직의 존폐가 쉽게 결정될 수 있는 리스크도 늘 안고 있다.

공민연계 도시재생에서의 중간지원조직은 독립성과 자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련 주체가 행정-주민-전문가-NPO 뿐이 아니라 민간 사업체가 주요한 파트너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민간의 빠른 속도와 자유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예산과 제도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다. 공민연계 도시재생에서도 중간지원조직의 마을일은 유사하게 진행할 수 있으나, 예산의 출처가 세금이 아닌 자체사업이 된다. 공유재산 위탁관리, 지역 축제 대행, 커뮤니티 버스 운행, 유료 클래스, 공공공간 개선사업 용역, 광고홍보사업 등이 주요 수입원이 될 수 있다.

군산시 영화시장 지역관리회사는 자립형 중간지원조직의 주요한 형태 중 하나다. 지역관리회사는 한정된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가치 상승분이 도시재생사업에 기여한 주체에게 합당하게 배분되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지역관리회사의 인건비, 운영비는 원칙적으로 자체 사업을 통해 조달한다. 지역관리회사의 관리 대상이 되는 점포들로부터 일정한 회비를 받고 해당 지역 전체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한 지역 브랜딩, 마케팅, 공간 개선, 이벤트 개최, 부동산 계약 등의 역할을 위탁한다.


주민참여의 재편: 국비는 주민에 가지 않고 지역에 간다.

도시재생에서 많은 전문가는 주민참여를 강조한다. 도시재생 사업에서 주민참여의 목적과 지향점은 무엇일까? 주민은 해당 지역의 특성과 지역민 간의 관계에 대해 어떤 전문가보다 상세하게 알고 있다. 또한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지역이 재편됐을 때 가장 큰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는 것도 주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을 섬세하게 다루는 도시재생사업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주민들의 의사를 사업계획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민연계 도시재생사업에서 주민은 좀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도시재생 사업의 주민참여 워크숍, 주민협의체 등을 보면 대부분의 참여주민은 해당 사업의 직접 이해관계자가 아니다. 많은 경우 행정이나 지역 주요 단체와 관련이 있는 지역 영향가 혹은 주민참여를 위해 동원된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향후 사업을 직접 '운영'하거나 '투자'할 사람은 아니다. 이건 마치 “남의 돈으로 남의 사업을 고민”하는 격이다.

국비지원 도시재생사업에서 가장 크게 고려해야 할 주민은 도시재생사업을 장기적으로 이끌어갈 운영주체가 될 주민이다. 도시재생뉴딜에서의 국비 투여 명분은 쇠퇴한 “지역”을 활성화시켜 다시금 지역 경제와 공동체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도시재생사업 방향 설정은 해당 지역에 “현재”거주하는 사람이 아닌 “미래”에도 거주할 주민이 결정해야 한다. 또한 지역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업 “운영자”가 결정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재생 사업의 국비가 현재 거주하는 “주민”들을 향하는 것이 아닌 10년 후, 100년 후에도 해당 지역이 독립적인 지역경제 발생지이자 공동체의 거점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역”을 향한다는 개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거주하는 주민만을 협의 대상으로 할 경우 주민들의 사망 이후, 이주 이후에 대한 대비가 부실해지는 한계도 있다. 국비의 투여 대상이 “주민”이 아닌 “지역”이라고 본다면 주민참여는 도시재생사업의 “목적”이 아닌 효과적인 “방법”으로 볼 수 있으며, 어떤 결정이 향후 해당 “지역”에 도움이 될지는 주민과 전문가, 행정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영역이고 때로는 지역에 장기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현재 거주하는 주민들의 뜻과 반대되는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군산 영화시장 프로젝트의 경우 사업의 직접 이해관계자인 건물주, 임차 창업자, 투자자, 지역관리회사가 의사결정권을 갖고, 지역 상인, 지역 주민, 도시재생지원센터, 행정은 자문과 지역 내 갈등조정, 정보 전달 등의 지원적 역할을 수행한다. 본인의 건물을 임대하는 건물주, 대여한 건물에 대해 직접 해당 사업을 운영하는 임차 창업자와 지역 관리회사, 그리고 사업에 본인의 돈을 투자하는 투자자가 의사결정을 하는 “내 돈으로 내 사업을 고민”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지역관리회사는 지역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지역 주민과 상인을 대상으로 사업에 필요한 정보를 취득하거나 전달하고, 사업의 영향을 받는 지역주민과 지역상인이 사업을 통해 삶을 질을 향상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도시재생교육의 재편: 현장 전문가에 의한 현장형 교육

유휴공간을 활용한 창업과 관련된 도시재생 교육은 실제 사업을 해보지 않았거나 현업에 종사하고 있지 않은 학자 중심의 강사진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큰 개념에 있어서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직접적인 사업단계에 접어들었을 때는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도시재생은 개념과 이론보다 현장과 실천이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이론과 개념에 대한 강의에 뒤따라 현업에 종사하는 현장 전문가가 중심이 되어 실제 사업지를 대상으로 하는 현장형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도시재생은 기존 도시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발상이다. 주민들은 도시재생의 참여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역량강화 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도시재생 역량강화 교육은 집체식 강의로 진행된다. 4주에서 8주 코스의 주민교육은 지식의 전달을 목표로 하는 개념 전달형 강의와 대상지에 대한 디자인 안을 도출하는 디자인 워크숍 방식의 강의로 구성된다. 그러나 교육과정에서 직접 이해관계자가 배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념 교육, 디자인 워크숍의 결과로 도출된 사업을 실행하는 운영주체는 별도로 선정하는 사례가 많다. 교육의 대상자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이뤄지는 단위사업을 장기적으로 운영할 운영자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 단계부터 사업운영을 염두에 두고 파트타임 혹은 풀타임으로 대상사업을 운영할 주체를 공모한 후 예비 운영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군산시 영화시장에서는 “액티브로컬 캠프”라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현업에 종사하는 각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강사진이 2박 3일간의 단기집중 과정을 통해 예비 운영자에게 실제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교육은 사업대상지인 영화시장과 5분 거리에서 진행하며 수시로 현장을 살펴보고 아이디어를 보강했다.


행정의 재편: 도시재생 에이전트 도입을 통한 행정의 유연성 확보

공민연계 도시재생에서 행정은 민간영역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공격적 사업성을 장려하기 위해 개입의 여지를 줄이는 방향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공공성 확보와 유지를 위한 민간 사업자 선정과 모니터링 절차를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행정은 민간의 작동방식에 대해 이해를 넓혀 가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행정 내의 제도적 경직성이나 절차의 복잡함으로 민간의 속도와 창의성을 따라가기 어려울 때에는 공민연계를 위한 별도의 조직을 꾸리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공공과 민간의 특성을 모두 이해하면서 행정의 권한을 일부 위임받아 민간주도의 도시재생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도시재생 에이전트”를 도입하는 것이 방법 중 하나다. 도시재생 에이전트는 행정보다 유연하면서도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고 행정과 민간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두루 갖춘 조직이 담당하는 것이 좋다. 도시재생 에이전트는 공공과 민간 양 측에 대해 때로는 배려있는 조력자로 때로는 엄격한 관리자로 때로는 단호한 전문가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군산시 영화시장 프로젝트에서는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도시재생 에이전트의 역할을 담당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는 행정과의 신뢰를 기반으로 영화시장 프로젝트에 대한 행정의 권한과 역할 일부를 위임받아 영화시장 사업 전반을 조정하고 있다. 행정과 민간이 바로 연결될 때의 마찰을 완화하기 위해 민간팀들을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계약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고 민간의 특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했다.


연구의 재편: “본 사람”에서 “해본 사람”으로

공민연계 도시재생의 성공을 위해서는 고정된 역할의 경계를 허무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현장 연구자의 역할이 인터뷰나 설문, 현장조사를 통해 일어난 사건을 면밀하게 “보는”데 치중했다면, 공민연계 도시재생에서 연구자의 역할은 직접 사업의 당사자가 되어 사업을 “해보는”작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아직 국내에 사례가 전무하다시피 한 공민연계 도시재생은 디테일한 세부 단계에서 치명적인 갈등과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높다. 전혀 다른 작동원리로 움직이는 민간과 공공이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가 큰 갈등을 유발하거나 법적 문제로 비화될 여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의 방법과 범위도 보다 현장밀착형으로 접근하여 인터뷰에서 도출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슈를 파악하고 그 해법을 현장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본 사람”에 머물 경우 실효성 있는 정책대안이나 사업모델의 제시가 어렵다. 사례에 직접 관여해서 문제 해결 과정에 동참함으로서 보편화할 수 있는 도시재생 사례를 만들고, 그 과정을 충실히 기록함으로 인해 향후 유사한 사업을 진행할 공공과 민간 영역에 길잡이를 만들어 주며, 이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끊김 없이 전달될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공민연계 도시재생은 다양한 도시재생의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도시재생뉴딜 사업 앞에 산적해 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 행정, 연구자, 실행 주체, 교육주체가 기존의 방식을 재고하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며 지역 상황에 맞는 방법론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영화시장 프로젝트는 소규모 공민연계 도시재생사업이다. 영화시장은 2017년 12월 기준 새장 내부 13개 점포가 영업 중이며, 10개 점포가 비어있는 소규모 시장이다. 영화시장 프로젝트의 목표는 영화시장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지역관리회사를 두고, 지역관리회사가 자체 수익사업을 통해 자생적 운영주체로 지속가능한 지역 재생을 추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는 민간의 사고방식을 차용하고 민간의 기획력을 극대하기 위해 액티브 로컬 프로젝트 팀(블랭크, 로컬디자인무브먼트, 어반하이브리드로 구성)과 함께 기획팀을 구성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와 액티브 로컬은 군산시와 협의 하에 민간운영주체인 지역관리회사를 수립하고 영화시장 전체의 콘셉트를 확정하며, 창업자를 선정, 교육하는 절차를 일괄적으로 진행했다.


*본 원고는 건축도시공간연구소 '건축과 도시공간'에 기고한 글을 재구성하여 작성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