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일출 사진을 찍기 위해 도착한 곳은 통풍구(투풍구 골짜기). 짙은 어둠 속에 지프차에서 내려보니 어스름하게 아래쪽에 하천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웬일로 다른 중국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가 했더니 하천 저 아래쪽에 개미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삼각대를 설치하고 해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후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구릉 너머로 아침 해가 솟아 올랐다. 늘 보는 풍경이지만 둥근 얼굴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때 그렇게 가슴이 뛸 수가 없다.
하천너머 울타리를 치듯 줄지어 서있는 나무에 아침 햇살이 비추니 곱게 단풍으로 치장한 나무들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해가 뜰 때를 진사들이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 때문이다. 찬란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쨍하고 강한 빛이 아닌 따뜻하고 여린 햇살이 비쳐 풍경은 황금빛으로 빛이 났고 붉게 물든 언덕 위로 기다란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하천이 S자를 그리며 흐르고 초록이 함께한 풍경은 심신을 편하게 한다. 반룡계곡은 딱 그런 곳이었다. 지난해 홍수로 무너져 내렸는지 길은 엉망이었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좋다. 두 발이 묶여 부자연스럽게 뛰는 말들이 계속 우리를 쫓아와 뛰어야만 했다. 멀리 도망가지 못하기 하기 위해 발을 묶어놓았을까?
인공으로 가꾼 호수 인듯한 공주호. 공사 중인데도 일반 관광객이 많다.
동구 여우골은 승냥이나 여우를 사육하는 곳이라는데 큰 오름과 넓은 땅이 개인 소유란다.
말들이 물가를 달리며 뽀얀 물보라를 찍기 위해 간 곳은 작은 시내가 흐르는 울란공하다. 처음에 입장할 때만 해도 왜 이곳의 말들은 이렇게 지저분한가 했더니 이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시냇물 위를 달리기 때문이다.
일행과 떨어져서 조금 늦게 들어갔더니 머리가 빡빡인 사람들이 쫓아오며 마구 뭐라고 한다. 영문을 몰라하자 아마 내가 돈을 내지 않은 다른 일행으로 착각했던 것 같은데 들리는 말이 중국어 같지 않다. 아마 몽골인들이 운영하는 곳 같다. 달려오는 말들을 쫒는 사람들을 보니 옛 몽골인들의 기상이 느껴지며 초원을 이렇게 달리지 않았을까 싶다.
원 없이 달려오는 말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정말 이곳의 하늘은 너무 맑고 깨끗해 해를 가리는 어떤 것도 없다. 둥근 불기둥 하나가 호수에 잠기고 있었다.
다음날 백가와보의 뒷산에 도착했을 때 벌써 하늘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명장면을 놓칠세라 어둔 언덕길을 얼마나 뛰었는지 모른다. 채 숨도 가다듬기 전부터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여명보다 더 좋았던 것은 건너편 언덕 아래 숲에 짙게 내려앉은 안개다. 마치 비밀의 숲을 염탐하는 것 같았다.
소하구는 주인이 문을 열어주고서야 입장할 수 있었는데 하천과 자작나무숲이 어우러진 동화 속의 나라 같았다. 화가가 그려놓은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한 이곳의 자작나무는 아침 햇살을 받아 빛이 났다. 이 모습 때문에 아직도 카메라를 놓지 못하고 전 세계를 헤매고 다니고 있다.
5박 6일의 일정이었지만 오고 가는 여정을 빼고 나면 딱 3일간의 출사였다. 오랜만에 사진에만 몰두한 시간이었고 말 사진과 일출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건강이 여의치 못한 관계로 별을 보고 오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몽골과 내몽고는 다르다. 몽골은 독립국가인데 비해 내몽고는 17세기 청나라에 병합된 이후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중국의 자치구다. 넓고 맑은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몽골과 비슷하지만 내몽고가 좀 더 개발이 진행되어 있어 다양한 숙박 시설과 관광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데다 체험관광도 할 수 있다.
초원 지역만을 달려올 때는 이런 큰 도시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 번쯤은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으나 먹지 못했던 것은 한인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하긴 추워지면 영하 30도를 오르내린다고 하니 웬만한 숙박업소는 겨울 동안 문을 닫는다고 한다.
저녁에 나가보면 양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밤에 불이 켜지면 웬 간판들은 그렇게도 큰지 '역시 중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팁도 원화를 주어도 된다. 물론 슈퍼마켓에 가면 중국 화폐로 내야 하고 적은 금액이어서 인지 카드는 쓸 수가 없었다.
내가 태어나서 노상방뇨를 이렇게 많이 한 적도 없다. 호텔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공중화장실이라는 게 없다. 9시간 버스를 타고 올 때도 한 번인가 고속도로 휴게소를 제외하고는 '남자는 앞으로 여자는 뒤로'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진을 찍다 보면 남자들이 근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뒤돌아서 일을 보고 있었다.
깨끗하고 청정구역으로 보이는 자연에 미안할 지경이다. 맑고 푸른 초원이 사람들에 의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이 모습 그대로 보존되면 좋으련만.
울란부통의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황금빛 초원은 당분간 내 눈앞에 어른거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