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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Oct 27. 2024

패상초원하면 떠오르는 것은

중국 ‘내몽고’로 사진여행을 다녀왔다. 가을을 맞이한 초원은 온통 황금빛이었다. 우리와 다르게 지평선만 보이는 ‘패상’ 초원에는 산이라고 할 수 없는 언덕배기가 가끔 보였다. 봉긋한 언덕 한쪽 귀퉁이에 나무 몇 그루가 부끄러운 듯 서있는 것이 마치 동그라미 얼굴에 눈을 반짝이며 예쁜 머리핀 하나 꽂고 있는 캐릭터 같았다. 또 어떤 곳에는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처럼 띄엄띄엄 나무 몇 그루가 썰렁하게 서있는 곳도 있다.  

   

작은 바람도 느껴지지 않는 드넓은 황금빛 초지 바로 위에는 가슴이 시릴 정도로 맑고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제 세상을 만난 듯 마음껏 떠다니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그 모습만 보고 다녔다. 보고 또 봐도 질리기는커녕 절로 입 꼬리가 귀까지 올라가며 가슴이 뛰었다.    

 

한 가지 문제는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실례를 하려 해도 작은 엉덩이 하나 가려줄 나무가 없으니 동산 너머까지 한참을 뛰어가야 했다. 도대체 일주일 동안 몇 번이나 이렇게 실례를 하고 다녔을까? 하긴 사람 구경도 할 수 없는데 화장실이 있을 리가 없다.  

   

첫날, 심양에서 울란부통까지 9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갔다. 

“자, 용변 보시고 가실게요”

허허벌판에 내려진 우리가 어리둥절해하자 가이드는

“아, 남자는 앞으로 여자는 뒤로.”     

처음에는 물도 덜 마시며 최대한 참아보려 했다. 하지만 생리적인 현상을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이튿날부터는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큰 나무를 등지고 앉아 수다도 떨며 일을 봤다. 누군가 방귀까지 뀌자 

“아이고 시원하시겠습니다”

잘 모르던 사람들은 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노상방뇨를 하며 금세 친해졌다.     


하긴 노상방뇨하면 잊지 못할 기억이 또 있다. 인제의 자작나무 숲에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다. 자작나무가 있는 산 정상이 사유지이어서인지 차가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꾀를 내어 바로 산 옆으로 자동차의 방향을 틀었다. 최악의 결정이었다. 길이라고 할 수 없는 좁은 길을 지날 때 바퀴 바로 옆으로 흙이 두두두 저 밑으로 떨어졌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으나 그 길을 벗어나도록 마구 나대는 가슴을 움켜잡으며 각자의 신에게 무사하기를 기도해야 했다. 그렇게 겨우 산을 넘어가 발견한 자작나무 숲에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가 화장실을 찾았으나 산속에 화장실이 있을 리가 없다.


차츰 세상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했을 때 저 앞에 컨테이너가 보였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뛰었다. 이보다 더 시원할 수 있을까? 아, 그런데 바로 앞에는 밭을 매고 있는 있던 사람들이 멍하니 일손을 멈추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도 아닌 여자들이 줄줄이 오더니 자기네를 바라보며 일을 보고 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남자들과 같이 내려오던 길에 보이는 컨테이너가 가림막으로 생각했는데 반대편에는 일하시는 분들이 더 많이 있었던 것이다. 얼른 일어나려고 했지만 너무 오래 참았기에 쉽게 끊을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불편한 시선 듬뿍 받으며 일을 보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쳤다.

     

내몽고 유럽풍경구로 일출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다. 연이은 강행군으로 컨디션도 좋지 않은 데다 시커먼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보다 짜증이 나서 일찌감치 차로 돌아왔다. 지프차는 일출 포인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 남자들이 차만 주차되어 있는 이곳에 내려와서는 등만 돌리고 느긋하게 볼일을 보는 것이 아닌가? 동행과 수다까지 떨면서 말이다. 도대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 건지.....    

  

새벽 찬 바람에 몸이 덜덜 떨리기도 하는 데다 남자들 때문에 지프차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인 운전사와 함께 차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 시간은 왜 그렇게 길기만 한지.  미안한 마음에 팁을 주었더니 자기는 친절을 베푼답시고 한국의 최신 노래를, 그것도 아주 크게 틀어 주었다. 발라드가 아니면 내게는 그저 시끄러운 소음인 것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꺼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기껏 친절을 베푼답시고 틀어주었는데 거절하지도 못하고 있으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기사는 자기 휴대폰까지 건네주며 선곡하란다. 아무리 훑어봐도 내가 아는 노래라고는 이정현의 ‘바꿔’라든가 싸이의 ‘강남스타일’ 뿐이었지만 꼭두새벽에 들을만한 곡은 아니었다.   

    

요즘 한참 연습하고 있는 뮤지컬이 ‘유린타운’이다. 오줌을 누려면 누구나 공공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는 기본 발상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다. 사기업이 운영하는 공공 화장실은 입장료가 아주 비싸다. 가난한 사람들은 매번 화장실에 갈 돈이 없어  참다못해 노상방뇨를 하게 되고 결국 경찰에 붙잡혀 최후를 맞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 후 가난뱅이들은 폭동을 일으켜 무료로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지만 무분별한 물 소비로 마을에 물이 말라버려 결국 유령마을이 되고 만다. 

    

작가는 지금처럼 물을 아끼지 않고 사용하다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황당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외국 사람들이 물을 사 먹는다고 했을 때 달나라 이야기로 여겼는데 요즘 물을 사 먹고 있지 않은가?   틈만 나면 대본 연습을 하고 있는 나는 종일 ‘오줌’ ‘유린’과 같은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데 하필 패상에 온 것이다.  

    

중국인들이 막무가내라는 것은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명소에서 사진을 찍으러 가면 자리싸움이 늘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최악이었다. 말 사진을 찍기 위해 갔기 때문에 말을 서너 번  연출시켰다. 계곡에서도 초원에서도 또 물가에서도 말은 사진작가들을 위해 달리고 또 달렸는데 사람들은 자리싸움만 하고 있었다.     


우리는 늘 제일 먼저 도착해 명당에 자리를 잡았으나 시간이 임박해서 온 중국인들은 막무가내로 끼어들었다. 멋진 말이 아니라 그들의 머리통만 사진에 나오게 되니 안 된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들은 척도 안 했다. 하루는 못 들어오게 저지를 하다가 중국 여자에게 얼굴을 한 대 얻어맞기도 했다. 큰 싸움으로 번질까 입을 다물었지만 그 후로 내가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그날 밤늦게까지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어느새 중국에도 사진 열풍이 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최신식 카메라를 구비하고 있었지만 매너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끼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서 내내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떠난 내몽고 사진여행은 패상초원의 아름다운 모습과 말들이 거침없이 뛰는 모습과 함께 중국인들의 몰상식한 행위와 노상방뇨를 했던 부끄럽고 씁쓸한 기억도  함께 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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