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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한 지 어느새 40년

by 마미의 세상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일까? 은행 다니고 빵집 운영하며 돈을 번 것? 사진이나 글쓰기 등의 취미를 가진 것? 남편과 결혼해 두 딸을 낳고 살아온 것?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지만 그중 으뜸은 남편과 결혼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큰 부자도 아니요, 대기업의 임원이었던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아 박사까지 공부한 수재도 아니다. 그저 예쁘장한 얼굴 하나 보고 결혼하다 보니 결혼식장에 신부가 고무신을 신고 들어가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었다.


지난 12일이 우리의 마흔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긴 시간 별 일 없이 알콩달콩 살아왔던 것은 전부 그 사람 덕분이다. 성실한 데다 남들처럼 허튼짓 한 번 하지 않고 일찌감치 은퇴해 삼식이가 된 사람들과 달리 칠십이 내일모레인데도 새벽부터 일터로 향하는 모습은 조금은 짠하기도 하지만 든든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지랄 맞은 내 성격을 받아주며 살아 줄 사람은 그 사람뿐일 것이다.


얼마 전 남편 대학 동창들의 부부 동반 모임이 있었다. 와이프들끼리 모여 앉아 남편 흉을 보고 있을 때다. 나도 질세라 욱하는 그의 성격이나 가족들에게 돈 쓰는데 인색한 것에 대해 흉을 보았다.

"무슨 소리야 명호 엄마가 가장 복 있는 것 같은데. 지난번에 보니까 자기 사진 찍는뒤에서 삼각대 들고 졸졸 따라다니더라. 출사지에도 열심히 데리고 다닌다며? 요즘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니."

"무엇보다 여태 일 한다잖아요. 남편 복 하나는 제대로 타고났다니까요."

틀린 말도 아니라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하지만 짠돌이인 데다 아직도 로또를 사며 허황된 꿈을 꾸는 남편은 정말 이해가 가질 않는다.

"여보, 우리 백세까지 살지 못해. 그리고 더 이상 욕심내지 마. 우리가 가진 집 줄여가며 살면 충분하지 않아? 딸들에게 더 남겨주려고 그러는 거야?"

"모르는 소리, 로또를 사면 일 주일이 얼마나 행복한 데?"

환하게 웃으며 능청스럽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만다.


몇 년 전부터 나오는 국민연금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모아 온 그는 그 돈만으로 내년 3월에 새 차를 뽑을 예정이다. 아파트 앞 주차장을 지나가다가

"바로 저 차야 괜찮지?"

남편은 기쁨 가득한 눈으로 그 차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요즘 흔하디흔한 현대의 제네시스도 외제차도 아니다. 남편은 여행 가고 사진 찍기 좋아하는 나를 위해 캠핑갈 수 있는 차로 골랐단다. 난 캠핑보다는 싸구려 모텔 방이라도 집에서 자는 게 좋은 데 말이다.


능수능란하게 운전도 잘하더니 요즘은 부쩍 서툴어진 데다 생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안 하던 사람이 자주 아프다고 한다. 머리카락도 희끗희끗해진 데다 훤해지고 있다. 그도 이제 나이가 드나 보다. 마음 한쪽이 저릿하고 안쓰럽다.


그의 성실함과 드러나지 않는 다정함 그리고 알뜰함으로 지금까지 편히 살아왔다. 이제는 무엇보다 아프지 않고 같이하는 평범한 하루가 가장 귀한 것 같다. 더도 덜도 말고 아침에 눈 떠서, 맛있는 것 먹고, 좋은데 구경하다가 저녁 불빛 아래 두 손 꼭 잡고 잠들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래, 살면서 가장 잘한 일? 그 사람을 만나 결혼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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