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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치 Sep 04. 2021

003.모두가 바라는 나의 면허(완)

한참을 늦어버린 후기


 퍽 늦은 후기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2종 보통 면허를 취득했다. '너무 잘하면 어쩌지?' 생각했던 도로주행 시험에서 한번 쓴 맛을 보고 이 시험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은 나는, 두번째 시험에서 얼결에 합격해버렸다. 정말 얼결에 합격을 했다는 표현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네 가지의 코스 중 가장 쉽다고 생각했던 코스에 '당첨'되었고, 방해 요인도 없었고, 날씨까지도 나를 도와줬다. 온전히 내 실력이었다고 말하기는 부끄럽다.



 '정말 모두가 나의 면허를 바라는구나!'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건 두번째 시험이었다. 첫 도로주행에서 이런 성공을 겪었다면 아마 벌써 후기를 남기고도 남았을 것이다(자랑하고 싶어서 입이고 손이고 근질거렸을 테니). 하지만 몇달이나 지나고, 내가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건 바로 첫번째 시험이다. 나는 그 날의 날씨, 모든 상황들을 잊지 않기 위해 미리 몇 가지의 단어들을 메모해 두었다.



 '비, 고가도로, 차선변경, 교차로, 무단횡단'



 눈치가 좋은 사람이라면, 단어들만 듣고도 내가 왜 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는지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물론 굳이 아픈 곳을 찌르자면 내 실력 부족이 8할이었겠지만, 나는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싶다.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에 그만큼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내 첫 도로주행 시험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어느 화요일이었다. 평소 비 내리는 날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이 날만큼은 예외였다. 비가 이렇게 원망스럽던 날이 없었다. 내가 모는 자동차가 처음으로 도로에 나가는 날인데 비라니, 그 와중에 '해가 쨍쨍, 맑은 날만 운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운전은 이런 날에도 해야한다'는 감독관의 말이, 너무 다 맞는 말이라 더 얄미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쳐, 운전하기 딱 좋은(어디까지나 내 기준이지만) 조도가 만들어졌다.


 '내가 이렇게 큰 기계를 움직이고 있다니!'


 시험임에도 묘한 설렘이 있었다. 기분도 좋고, 쉬운 코스에, 선한 인상의 감독관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럼에도 조금의 불안이 있었다면, 내가 그동안 뻔한 소설과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 것이다. 꼭 완벽한 하루의 끝에, 다음 회차를 위한 갈등상황과 마주하게 되니까! 물론 그래서 다음이 기대되곤 하지만, 클리셰는 내 일이 아닐 때에만 재밌고, 내가 겪지 않아야 흥미진진하다.


 신호를 받아 출발을 했고, 고가도로 진입을 앞두고 있던 그 때, 감독관이 갓길에 차를 대라고 했다.


"네??"


'아니 왜? 조금만 더 가면 끝인데, 합격이 코 앞인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출발할 때는 선하다고 생각했던 감독관의 얼굴이, 그렇게 미워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순순히 차를 갓길에 댔고, 감독관은 마치 내 중·고등학교 선생님쯤 된 것 같은 얼굴과 말투로 나를 추궁했다.(혼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아까 건너편에 무단횡단 하려던 아저씨 못 봤어요? 그 아저씨가 발 한 쪽 디뎠잖아요?"

"네..?"


 나는 아저씨의 '아'자도 보지를 못했다. 보지 못함은 물론이고, 발을 디뎠다니, 무단횡단이라니! 이게 정녕 내가 이 시험에서 탈락해야 할 이유라니, 억울함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물론 못 봤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이게 정말 내 잘못뿐인가? 몇 달이나 지난 지금도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아저씨가 너무 밉다.


"무단횡단이든 뭐든 사람이 먼저니까 무조건 잘못한거에요~"


 글을 쓰는 지금도 분하다. 무조건 잘못이라니, 성인이 되고난 후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학원에 도착해서,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내게, 학원 강사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학원 강사였던 감독관이 내 얘기를 강사들에게 한바탕 했던 모양이다.


"사람 있는데, 그냥 갔다면서~?"

"그러면 안돼~!"

"왜 그랬대? 큰일 날 사람이네?"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생생하다. 꼭 엄청난 사고를 치고, 교무실에 끌려와 벌서는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팔이 떨어질 때까지 팔을 귀에 딱 붙이고선, 지나가는 선생님들에게 꿀밤 한 대씩 얻어 맞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떨어진 건 떨어진 건데, 그걸 왜 자기들끼리 공유하고, 나를 혼내?'


 셔틀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1종 면허 소지자가 나를 보며 빙긋 웃다, 잔뜩 울상인 내 표정을 보곤 바로 안아주었다. 꿀밤 잔뜩 맞고 돌아온 애같은 나는 미주알 고주알 다 일러바쳤고, 신랑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천재지변이라 생각해요. 시험은 또 보면 되지!"

 

 역시나 1종 소지자여서 그런지 이성적이다. 천재지변이라니, 그럼 내 샛노란 차를 보고도 무단횡단을 하려던 그 아저씨는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신이라도 되는걸까.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나는 두번째 도로주행 시험에서 2종 보통 면허 소지자가 되었다. 내가 이 소동으로 배운 것은 '운전을 잘 하는 법'이 아니라 '좋은 보행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였다. 누군가에게 천재지변을 던져주지는 말아야지. 목표로 했던 배움은 아니지만, 배움이 있었으니 만족한다.


 이제 정말 끝이다. 모두가 바랐던 나의 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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