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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Feb 02. 2021

브랜딩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박창선 <어느 날 대표님이 우리도 브랜딩 좀 해보자고 말했다> 리뷰

  1. '브랜딩'이라는 단어를 보고 있노라면 중세의 유명론 vs 실재론 논쟁이 떠오른다. 브랜드는 실재하는가? 당장 쥐고 있는 스마트폰의 삼성, 애플 로고만 봐도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브랜드가 손에 잡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충성도를 따라 구매할 때 거기에는 제품 이상의 이유가 있지 않은가. 브랜드는 회사 자체도 아니다. 아이팟을 쓰는 나는 팀 쿡 말고 애플 사원을 한 명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서비스인가? 왠지 정답에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다. 하지만 동일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도 우리는 특정 브랜드를 향한 선호도를 가진다. 브랜드가 고작 인간이 가진 인식의 편향이었다니! 다시는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나는 '노브랜드' 버거로 배고픈 위를 달래러 향했다.



  2.  결국 브랜딩이 어려운 이유는 브랜드가 위처럼 굉장히 추상적이고 인식론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뭔지 대충 감 잡았다고 치자. 그걸 실무자 입장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 것인가? 더군다나 한 사람이 번듯한 개성을 갖추기도 어려운데 회사 전체가 또렷한 브랜드를 가진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 날 대표님이 우리도 브랜딩 좀 해보자고 말했다>는 타 브랜딩 서적보다 훨씬 쉽고 실무적인 방법으로 브랜딩에 근접하도록 도와주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은 애프터모멘트 박창선 대표님의 저서로, 오랜 컨설팅 경험을 토대로 브랜딩뿐만 아니라 회사 업무 흐름의 이상적인 A to Z를 제시한다. 책을 읽으면 "아니, 브랜딩 하나 하는데 회사 통째로 갈아엎게 생겼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브랜딩이 콘셉트를 끼고 노는 소꿉놀이가 아니라, 회사 전체의 방향 조절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3. 처음부터 끝까지 책은 강조한다. 브랜딩은 새로운 다른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하던 일을 우리의 색깔에 맞게 바꾸는 일이라고. 소비자와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최적의 카피와 포지션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기준'을 잡는 과정이다. 기준이 잡히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해진다. 이후 업무의 방향과 톤 앤 매너를 기준에 맞춘다. 그리고 피드백. 마치 머신러닝처럼, 기존 회사 색깔과 소비자의 이미지라는 관계의 오차를 줄이는 것, 그리고 그 모델을 찾아내는 과정을 브랜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브랜드가 디자인과 카피를 통해 하나의 구체적인 이미지와 메시지로 드러나면 완-벽.



  4. 책은 신기하게도 "바쁜데 브랜딩 어떻게 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 업무와 책임 분장의 과정까지 자세히 설명한다. 이렇게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디테일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디 그뿐인가. 캐릭터/세계관 만드는 법, 카피 쓰는 법, 영업, 마케팅, 전화 응대, 오프라인 행사 운영까지 가성비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하지만 저자가 위 내용들을 굳이 TMI로 섞어 놓았겠는가. 책을 덮고 나면 브랜딩은 결국 업무의 모든 과정에서 묻어 나오게 된다는, 즉 일종의 문화이기에 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심오한 교훈을 얻게 된다.



  5. 꼭 브랜딩 실무자들만 이 책에서 도움을 받는 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브랜딩은 일종의 치밀한 기획으로, 음반 기획자를 꿈꾸는 내게도 큰 통찰력을 주었다. 많은 케이팝 가수와 앨범이 기획될 때 브랜딩 및 포지셔닝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케이팝이라는 특수성에 치우치지 않고 브랜딩이라는 보편적인 방법론도 적극 참고한다면, 유아적으로만 비쳤던 세계관 또한 더 세련되게, 그리고 유기적으로 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브랜딩은 회사, 집단, 개인 모두를 관통하는 솔루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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