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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Mar 12. 2021

물욕의 함정

돈은 생각보다 더 위대하다

  1. 돈을 정기적으로 번다는 건 축복할 만한 일이건만, 새로운 소비의 장에 들어섰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록 최저시급일지라도 한 달 내내 노동에 투자하게 되면, 용돈과 알바비 벌어 쓰던 시절과는 조금 다른 규모의 돈을 손에 쥐게 된다. 집안 사정이 어렵거나 당장 독립해 나와 살지 않는 이상 월급은 생각보다 큰돈이 된다.



  2. 소비함으로써 살아가는 우리 자본주의 키즈들은 페이데이가 가까워지면 행복한 고민을 시작한다. 요번 달에는 무엇을 살까? 못 갔던 여행을 갈까? 계절이 바뀌니 새 옷은 어떨까? 등등. 그렇게 질과 가성비, 브랜드를 따져가며 원하는 상품을 물색하게 되면 본격적인 소비자로서 마주하는 새로운 벽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내가 사기 버겁거나 못 사는 것들이다. 몇 개월을 쪼들려 살아야 구매할 수 있는 것부터, 직업을 바꿔야 꿈꿀 수 있는 것까지.



  3. 결국 사회초년생의 행복한 고민은 시간이 지나면 속물적인 욕망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성숙한' 어른들의 대화에 오고 가는 부동산과 주식, 인테리어, 자동차 시세 등은 새 옷과 핸드폰, 노트북 따위에 만족하던 그들의 눈에 성큼 다가온다. 0에서 1이 되는 도약을 이루었지만 1 앞에는 더욱 큰 숫자들이 경제적 레벨이라는 이름으로 줄을 서 있다.



  4. 문득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싶어 탭을 하나 구매하고 싶었다. 첫 구매인 만큼 좋은 모델을 사고 싶었던 나는 90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요즘 탭의 가격에 한 번 놀라고, 15만 원에 달하는 전용 키패드에 두 번 놀랐다. 학생 시절 취업만 되면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단언했던 이 기기들은 '당연하게' 살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이로써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 하나가 깨졌다. "일단 돈이 없어도 나는 소박하게 살 수 있다"말이다.



  5. 위 명제는 역설적으로 '조금' 벌기 시작하면 깨진다. 자본의 심연은 너무나도 깊고, 강력하게 우리들을 빨아들인다. 제한된 소비를 경험한 우리는 경제적 성공의 욕구로, 투자로, 전문직으로 이끌린다. 그렇다면 나도 친구들의 반 토막 연봉을 받으면서 엔터테인먼트에서 버틸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은 깨지기 쉬운 판타지지만, 돈은 견고한 판타지라는 걸 알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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