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덕후가 알려드립니다
독서의 '바람직한'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의 책이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럴까? 먼저 여기서 '도움'을 명확히 정의내릴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독서를 하는 목적은 비슷하지만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문학적인 차원에서 감동을 얻고 '좋았다'는 주관의 영역이기에 건드릴 수가 없다. 음악이 그런 것처럼.
따라서 이런 류의 감동을 향한 비판을 제쳐두고, 독서를 '특정 사실에 관계된 정보를 얻고 자신의 변화를 꾀하는 목적을 가진 행동'으로 정의해보겠다. 즉 나는 독서의 실용적인 부분에만 주로 주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이나 에세이류는 다루지 않겠다.
1. 자기계발서의 경우 : 의외로 모든 자기계발서가 구리진 않다. 자기계발서가 유독 MZ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건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책에서 비롯된 세대론적인 경향이 크다. 저자들이 바보도 아닌데 자기계발서에 팔리지 않는 '노오력' 코드를 계속 집어넣겠는가. 레이 달리오와 같은 유명 사업가들의 자전적 회고록은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자기계발서가 명백하게 비효용적인 경우는 여러 주제를 하나에 담은, 추상적인 테마로 이루어져 있을 때이다. 이런 책들은 제목에 '성공하는 방법', '재테크하는 방법',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 등 종합서의 야마를 내세운다. 내 경험으로 이러한 '얕고 넓은' 책이 도움 되는 경우는 그 분야의 전반적인 흥미를 유발할 때뿐이다. 열심히 읽어 봤자 실질적으로 기억에 남는 건 하나도 없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이는 장르 불문하고 모든 책에 적용되는데, 백과사전처럼 '이 세상/분야의 모든 지식'을 아우르는 제목을 흔하게 봤을 것이다. 바로 그런 책들이 효용이 좋지 않다.
따라서 자기계발서는 용도가 구체적인 경우, 관심 분야의 하위 항목을 다루는 경우를 추천한다. '일 잘하는 법'이 아닌 '기획 잘 하는 법'(더 나아가 '기획서 잘 쓰는 법'이 좋다), '글 잘 쓰는 법' 을, 그냥 마케팅이 아닌 '그로스 해킹', '콘텐츠 마케팅', 'SNS와 플랫폼 분석' 등 하나의 스킬이나 방법론만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이 쓸모도 있고 머리에 오래 남는다. 특히 내가 꼭 필요로 하는 스킬이라면 이런 세부 방법론에 관한 책을 한 번에 여러 권 읽는 것이 좋다.
2. 제목으로 사기를 치는 경우 : 이건 출판사들이 머리가 좋은 경우라서 우리가 직접 목차를 보고 알아채야 한다. '마케팅을 잘 하는 방법' 비슷한 제목과 유명 실무자의 추천사를 박아놔서 구입했는데, 막상 보면 "그냥 이런 일을 겪었다" 정도의 에세이만 늘어놓은 책들이 있다. 이런 책에는 출퇴근길 브런치에서는 나름 공감할 수 있지만 돈을 주고 사기엔 아까운 내용들이 즐비하다. 유명 저자인지의 여부는 관계없다. <노희영의 브랜딩 법칙> 또한 일반적으로 써먹을 만한 법칙은 거의 없었고, 자신이 일하면서 느낀 점을 적은 회고록에 불과했다.
이런 책을 구입해 읽으면 거대한 인사이트를 얻은 기분에 나름 효용을 얻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적어도 실무자의 경험이지 않은가! 하지만 분야와 회사가 다르면 적용하기 어려운 방법론이 대부분이고, 아이디어는 좋아도 그 구체화 과정과 대외비급 노하우는 쏙 빼놓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왠지 자랑하려고 쓴 글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재미는 떨어지고 너무 이론적으로 보여도 당장 내일 보고서에 써먹을 수 있는 도표와 개념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책이 더 좋은 책이다.
앞서 말했듯 이러한 책은 목차만 읽더라도 어느 정도 걸러낼 수 있다(인터넷에서 구입할 때도 목차를 유심히 살펴보길). 그리고 비슷하게 번역된 외국 저자의 책도 사기를 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제목이 헬적화되지 않았나 원제를 한 번 살펴봐야 한다. 버나트 아란드의 <콘텐츠의 미래>의 경우 나쁜 책은 아니지만 <The Content Trap>으로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그리고 제목만 보고 유명 저자가 쓴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저자의 의견을 분석한 다른 사람이 쓴 책인 경우도 많다(물론 그 책도 다 구린 건 아니지만). 여하튼 번역 서적일수록 제목을 크게 바꾸는 장난질을 많이 하니 주의하도록 하자.
3. 고전의 경우 : 고전(여기서는 철학과 같은 어려운 분야의 책들)은 그 분야 연구자 혹은 덕후가 아니면 몇 페이지 넘기고 라면 받침대가 되기 십상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고전은 그 위상 탓인지 아니면 출판사의 이익관계 탓인지(저작권 증발 만세!) 그 딱딱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읽어야 한다는 버프가 걸려 있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과 사상의 흐름과 같은 심도 있는 내용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군주론>이나 <방법서설>, <자유론>같은 책을 읽어도 인생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이런 책들은 오로지 지적 충족만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텍스트를 읽어내는 훈련의 땔감으로써 사용할 수는 있다.
4. 케이스 스터디만 늘어놓거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 : 트렌디한 분야 혹은 미래를 다루는 책들에게서 종종 발견된다. 전자는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충분히 나오는 정보들을 그저 잘 구성해놓고 특별한 결론을 내놓지 않는다. 차라리 자신만의 이론이나 주장을 이끌어내면 좋을 텐데(이런 점에서 <플랫폼의 생각법>은 특정 방법론으로 플랫폼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은 책이다), 보고서마냥 케이스만 쭉 나열하면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만 든다.
반대로 너무 도전적인 태도를 가진 저자가 실리에 맞지 않는 예측과 분석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케이팝 씬 분석에 되도 않는 방법론을 사용한다거나, AI 기술자도 아니면서 그 활용과 미래에 대해 논하는 등등... 흥미롭긴 하지만 책으로 써서 나올 정도의 설득력은 없다. 이 부분에서는 내가 트렌드와 신기술에 회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감안하길 바란다.
5. 글을 마치며 : 책은 구입해서 읽기에 기회비용이 큰 활동(읽기에 시간이 많이 든다)이므로 좋은 큐레이션이 필요한 상품이다. 하지만 파이가 적어서 그런지 책 추천은 베스트/스테디셀러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인터넷 서점 협업 필터링은 구림), 그나마 독립서점을 통해 이루어지는 실정(그것도 갬성 에세이 위주)이다. '의미'와 '위로'만이 아닌 정보 취득과 실용성 기반의 솔직한 리뷰와 평이 많이 공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