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문 <크래프톤 웨이> 리뷰
1. 전역 직후 배틀그라운드에 처음 빠졌을 때, 국산 게임이라는 사실에 가장 먼저 놀랐다. 일단 배틀 로얄이라는 장르도 처음이었고, "일단 전반적인 톤 앤 매너가 K-게임 같지는 않은데...?"라고 생각했다. 물론 '테라'라는 MMORPG가 알려져 있었지만 그 장르가 취향이 아니었던 나는 당시 제작사 '블루홀'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들었다. 그리고 이 회사는 글로벌하게 인지도를 넓히며 파죽지세로 성장하더니 현재 크래프톤으로 사명을 바꿨다. 이젠 게이머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름. <크래프톤 웨이>는 대기업이 아닌 곳에서 어떻게 대작 게임이 탄생했고, 어떤 고초를 겪어왔는지 생생하게 설명해 주는 다큐멘터리이자 기록이다.
2.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당찬 비전과 창업자 6인의 패기를 보여주던 초반, 테라의 부진과 인수합병 속에서 미로를 헤매던 중반, 그리고 배틀그라운드를 통해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하고 날아오르는 후반이다. 엔씨소프트의 주력 멤버들과 시작한 블루홀 스튜디오는 'MMORPG의 명가'라는 비전으로 테라를 출시했다. 하지만 테라는 국내와 일본 시장에서 겨우 숨만 붙이며 삐걱거렸고, 블루홀은 스마트폰 보급으로 부상한 모바일 게임 제작사를 사들이며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3. 그때 배틀그라운드를 제작한 김창한 현 크래프톤 CEO가 지노게임즈 소속으로 합류했다. 그는 배틀로얄 전문가였던 브랜든 그린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섭외해 한국으로 데려왔다. 가까스로 투자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을 때, 1년의 제작 기간으로 출시된 배틀그라운드는 트위치로 입소문을 타며 블루홀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MMORPG의 명가를 꿈꾼 블루홀을 구원한 건, 어느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배틀로얄 장르의 게임이었다.
4. 어쩌면 고생뿐이었던 기록이자 한없이 날 것의 이야기를 담은 <크래프톤 웨이>의 핵심은 무엇일까? 치열한 도전과 성취? 멈추지 않는 끈기? 감성과 기술이 더해진 게임업계의 불가해성? 나는 개인적으로 "사업은 굉장히 공포스러운 도전이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가 등장할 때까지 내리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물론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그간의 노하우가 있었지만 결국 '한 방'으로 승기를 거머쥐었다. 만약 배틀그라운드의 초창기 프로젝트인 BRO가 무산됐다면? 혹은 MMORPG의 명가라는 비전을 수정하지 않고 계속 고집했다면? 승리는 당연히 도전하는 사람들의 것이지만, 패배 또한 대부분 도전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5. 한편 존재감이 가장 컸던 인물을 꼽자면 역시나 이사회 의장 장병규다. 회사 내부에서 주고받은 이메일이 고스란히 수록돼서 그런지 읽어보면 '빡센 사람'이라는 게 바로 보일 정도. 경영/투자자였던 그는 게임 제작자들에게 열정을 주입하기도 했고, 때론 그들과 마주해 공격적으로 대립하기도 했다. 과거 네오위즈와 첫눈으로 번 막대한 투자금을 계속 까먹었는데 오죽하겠는가. 어쨌든 매일이 피 말리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남아 지금도 여전히 크래프톤을 지키고 있다.
6. <크래프톤 웨이>가 특별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기업의 성공과 그 과정에서 생기를 잃고 말라비틀어진 창업자/직원들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대조되기 때문이다. 성공을 향한 열망은 어쩌면 악마의 거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패스트트랙 박지웅 대표는 유튜브 채널 EO에서 사업은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인간의 영원한 본능이기도 한 것 같다. 대기권을 뚫고 지구에 닿는 운석은 소수다. 빛이 되어 사라져간 별똥별이 된 수많은 창업자들에게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