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장면들> 리뷰
1. 언론인 손석희를 향한 내 관심은 크지 않은 편이었다. 그저 유명 앵커, JTBC 사장으로 알고 있었고(지금은 아니지만) '100분 토론'이란 고유명사를 만들어낸 사람 정도였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진로)로 언론 쪽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내 독서 편력에도 영향을 주게 됐다. 따라서 스타 언론인의 눈으로 본 한국 언론의 역사를 살펴보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들이 현장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사람들은 무릇 정사(正史)보다는 야사(野史)에 더 궁금증을 갖게 된다는 책의 표현처럼 말이다.
2. 손석희는 '어젠다 키핑'이란 개념을 제시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세월호와 태블릿 PC까지 그가 JTBC에서 지켰던 건 시간이 지나면서 사그라드는 이슈를 사회 중심으로 계속 끌어올리려는 노력이다. 휘발성 강한 정보사회에서 특정 안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건 언론인의 주요 책무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변화는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슈를 처음으로 제시하는 '어젠다 세팅'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태도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JTBC가 팽목항, 목포신항에서 총 521일간 체류하며 보도를 해왔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3. 책의 2부를 요약하는 말은 "저널리즘을 위해 운동을 할 순 있어도 운동을 위해 저널리즘을 하지 않는다"일 것 같다. 여기서는 그가 MBC에서 겪은 고초부터 JTBC로 넘어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다. 조국 정국에서 검찰개혁이란 본질을 지켜야 하는 상황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를 사이에 둔 중앙일보와 JTBC의 긴장, 그리고 '알릴레오'의 사과를 통해 드러난 뉴미디어 시대에 태동한 저널리즘 문제까지. 결국 "저널리즘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향한 손석희의 고민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4. 한편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뉴스룸'의 제작 비하인드였다. 뉴스룸에는 '앵커브리핑', '문화초대석', '엔딩곡'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 코너들이 많다. 특히 노회찬, 휴 잭맨 관련 에피소드를 책의 비하인드와 함께 유튜브로 시청하니 색다른 감상을 줬다. 그가 유명 언론인으로 남은 이유는 단순 언론인으로서의 품위를 지켜왔던 것뿐만 아니라 '시선집중' 시절부터 시작해 시청자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각양각색의 코너를 만들어내서일지도 모른다.
5. 굳이 손석희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바탕으로 「장면들」에 접근한다면 아쉬운 일이다. 2010년도 후반 한국 정치·사회의 단면으로 읽히든, 어느 방송가의 뒷이야기로 읽히든 확실히 재미있는 책이다. 프로 언론인이 쓴 글이기에 세련되고 글맛도 있다. 게다가 언론의 중심에서 몸소 겪은 굵직한 사건들을 풀어낸 '썰'이니 그 무게감은 오죽할까. 에세이의 형태로 모인 '장면들(The Scenes)'은 저널리즘이라는 작은 연결고리로 하나가 되어 마치 영화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