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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Feb 24. 2022

그 모녀의 시대, 그 시대의 모녀

최은영 <밝은 밤> 리뷰

  1. 흔히 문학은 간접 경험을 중심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곤 한다. 아무리 가상일지라도 문학에는 타인의 관점과 시대적 정보가 묻어나기 마련이니까. 언어는 정교하게 표현할 수만 있다면 내 인식 바깥의 무엇을 머릿속에 전달하는 데 꽤나 강력한 도구가 된다. 영상과 이미지처럼 직관적이지 않아도 좀 더 명료하고 내밀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문학이 때로는 가장 '자극적인' 매체라고 생각한다. <밝은 밤>의 경우 내가 절대 겪을 수 없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이질적인 간접 경험으로 다가왔다.



  2. <밝은 밤>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4대를 거쳐 이어지는 모계(母係)의 기록이다. 우리들의 친구,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그들은 일상과 시대에서 유래한 크고 작은 고통들을 겪어왔다. 책은 가부장적인 가족 구조와 보수적인 사회의 시선을 조명한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이혼 후 도망치듯 할머니의 고향에 다다른 것에서 시작된다. 부모님은 외도를 한 전남편을 두둔하고 남편이 있는 안정적인 인생이 더 낫다고 역설하는 상황이다. 할머니는 오래된 사진첩을 통해 주인공에게 과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남편에게 속아 이중으로 결혼을 당하고 본처가 찾아오자 버림받는 수모를 겪었다. 게다가 딸(주인공의 어머니)의 호적이 남편 쪽으로 등록되는 동시에 딸과 평생 친해지지 못하고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 증조할머니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평등하다'는 신조를 가진 천주교 신자 남편에게 평등하지 못한 대우를 받았다. 비극의 유전이다.



  3. 이처럼 책은 근대부터 이어진 여성의 사회적 고충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더불어 여성들의 유대로 극복의 가능성을 보여줬으니 온전히 여자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4대가 하나같이 남자들에게 고통을 받았다는 점에서 가부장 사회를 고발하는 관점의 비중이 너무 크지 않았나 싶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4대를 거쳐간 남자들을 모두 비루한 존재로 그려냈다는 사실은 예민하게 다가온다. 물론 문학이 특정 관점을 담고 있는 건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특정 관점을 담아내기 위해 문학이 쓰인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밝은 밤>은 왠지 후자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이해는 되지만 설득력이 크지 않은 간접 경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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