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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스그나우 Nov 05. 2024

지젤 비엔 <사람들>

Gisèle Vienne <Crowd>

 


ㅣ10.27(일) 4:00pm

ㅣ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ㅣ소요시간 : 90분




작품은 유럽의 어느 야외 페스티벌의 어느 새벽녘을 연상시킨다. 흙으로 덮인 무대, 바닥에 굴러다니는 물병, 빈 술병, 담배꽁초, 플라스틱 컵, 널부러진 옷, 쓰레기. 90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파티가 끝나갈 즈음의 심연을 읊조린다. 무대를 스크린에 비유하자면, 아주 느린 움직임으로 영화 속 장면을 길게 늘어뜨린 풍경이다. 높은 bpm으로 흐르는 음악 만큼이나 어쩌면 가장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순간들을 프레임수대로 초단위로 재생하는 듯한 춤. 실제로 슬로우모션, 정지, 반복 등의 영화적 연출이 자주 보인다.


등장하는 무용수들은 파티에서 군집된 사람들(crowd)이지만 15명이라는 많은 인물들의 개별적 주체성이 돋보인다. 그들은 포옹하고, 싸우고, 춤추고, 술을 마시고, 나뒹굴며 쾌락을 즐긴다. 무대에서 몸부림치고 떠다니며 드러나는 각 무용수의 심리적 상태와 감정, 배경이 구체적으로 읽힌다. 공허함, 실패한 욕망, 사랑, 허우적거림 등, 작품의 배경과 유연하게 얽히며 주체성을 드러내는 안무적 구성이 인상적이다. 지속되는 느린 움직임으로 인해 몸과 침묵을 더 잘 읽을 수 있게 된다.


무대는 풍경이 되었다가, 장면이 되기를 반복한다. 시간에 뒤쳐지는 아주 느린 움직임 속에서 칼같이 맞춰지는 박자와 군무. 그 찰나에서 정말 많은 연습과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형식적, 테크닉적으로 완성도가 아주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움직임의 속도를 조절했기 때문일까? 칼같은 군무를 잘 춘다고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아니다. 어쩌면 무용이라는 장르에서 무대에 잘 올라가지 않는 시궁창같은 배경과 내러티브를 끌고와 그 문화의 깊은 심연을 연구하고 안무적으로 적용시킨 것이다. 공허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환희를 무대에서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현명한 방식을 선택한 것. 관람하는 내내 시간과 인물과 춤에 매료되어 길을 잃었다가, 불안하다가, 불쾌하다가, 따스함을 오가며 기분 나쁜 유희과 기쁨을 겪었다. 공연을 관람한 후 귀가하는 길은 유난히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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