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스스로 군인이라 생각했을까?>>
최장기 집권 기록을 갈아치우고 물러난 아베 전 총리가, 2012년 말 총리가 된 뒤 7년 넘게 보였던 '불쾌한 직진'들이 다시 떠오른다. 특히 요시다 쇼인이라는 개화기 인물의 묘를 찾아 정치적 의지를 다졌던 모습은 그의 철학과 행보를 상징했다.
무관의 재야 전략가 요시다 쇼인은 죠슈(지금의 야마구치)에서 일본 팽창의 논리와 인물을 키워냈고, 그의 꿈을 실현한 제자들 중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 총리가 됐으며, 아베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 죠슈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일본 '정신'의 계승자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며 실천했던 것이다.
그런 아베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살해한 안중근 의사란 어떤 사람일까. 단 한순간의 망설임이나 고민도 없이,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고 매우 명쾌한 규정을 갖고 그들은 살고 있다.
테러리스트 안중근... 아베의 뒤를 이은 영원한 2인자 스가 총리 역시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고 했으며 비단 이들 만이 아니고 상당수 일본의 주류 세력에게 안중근은 위대한 이토를 저격한 테러리스트이며, '불령선인'(체제와 시국에 불만을 갖고 있는 조선인, 독립운동 세력을 폄하해 일컫는 말)의 원조쯤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우리는 어이없어한다. 침략의 우두머리를 응징한 정의의 의거였다고 칭송하고 자부한다. 그러나 테러냐 정의의 의거냐라는 판단은 서로의 입장에 따른 것이라 아마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다만 주목할 점은 안중근 의사는 거사 이후 자신에 대한 일제의 폄하 공세를 예견했던 것인지, 스스로의 행동을 설명하는 확고한 논리를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안의사는 체포돼 심문 과정에서 자신의 저격을 줄곧 이렇게 설명했다.
"난 대한국 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하얼빈에 파견돼 일본과 전투를 벌인 것이다, 그러니 난 일본에 잡힌 대한국의 군인, 즉 포로이며 따라서 국제법에 따라 처리돼야 한다"
국가 대 국가 간 전투를 벌인 것이며 그 와중에 잡힌 포로라는 논리다. 개별적이고 우발적인, 즉 사적인 폭력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정당한 교전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안의사는 망해가는 나라에서 나온 우발적 테러로 규정되기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대한제국과 일본의 대결로 의거의 성격을 끌어올렸다.
이런 논리의 완성을 위해선, 독립 국가로부터 받은 공식적인 타이틀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안의사가 내세운 것이 대한국 의군 참모중장이라는 직함이다.
1879년 태어난 안의사는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공식적인 관직을 가진 적이 없다. 안의사가 성인이 된 뒤 조선은 이미 일제의 통제하에 놓였고 그런 조국에서 출세길이란 무의미한 모욕일 뿐이었다.
고향에서 계몽운동을 펼쳤지만 26살인 1905년 조선은 외교권을 빼앗겼고, 28살인 1907년 군대도 해산된다. 특단의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1907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해 이듬해 1908년 이범윤과 의병을 창설하고 '참모중장'이란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두만강을 건너 일본 군경과 전투를 벌였지만 패퇴한 뒤, 의병 활동은 사실상 접었다. 그리고 1년 뒤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고 이듬해 1910년 순국한 것이 영웅 안중근의 31년 삶이다.
'참모중장'이란 타이틀은 실은 의병 활동을 한 1년 남짓한 시기에 사용했던 '자칭' 직함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한제국에서 부여받은 관직이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독립국가의 누구'라고 설명하고자 했던 안중근은 이 참모중장이란 이름을 내세우며 자신은 엄연히 독립국가의 군인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한 것이다.
몇 년 전 국방부에서 안중근을 장군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는데 안중근이 정말 군인이고 싶어 했고 자신의 정체성을 군인이라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없다. 오히려 이토 저격과 참모중장을 내세운 맥락에서 보자면, 그 무엇이 돼도 좋으니 독립 조국을 지키고 싶다는 뜨겁고도 슬픈 열망이 그의 진의에 가까워 보인다.
안의사는 강도 일제에게 당당히 '난 대한국의 누구'라고 설명할 그 무엇이 절실했다. 그래서 대한국 참모중장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안중근을 보면서, 우리는 '그가 진정한 군인이었구나'를 느끼기보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처절함, 명분을 확실히 하려는 엄밀함, 독립 조국을 향한 불굴의 신념 같은 훨씬 큰 가치들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나라에 헌신하는 건 군인의 본분이다)이라는 유묵은 뤼순 감옥에서 자신을 호송하며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한 일본 헌병에게 건넨 선물이다.
자신을 감시하다 흠모하게 된 일본 군인에게 '너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니 너무 안타까워 말라'는 영웅의 격려라고 누군가는 해석하고, 무인 집안에서 태어나 무인 기질이 탁월했던 안중근 의사가 간명히 정리한 '군인관'이라고 또 누군가는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독립국가의 누구'이기를 원했던 안의사가 이 말에서 남긴 핵심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명예롭게 맡게 되는 독립 조국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다. '군인본분'이 아니라 '위국헌신'에서 안의사의 진의를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서 생겨난다.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지자는 호소, 그게 군인이든 학생이든 상인이든... 그래야 독립 국가를 만들 수 있고 그래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목숨을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깊고 무거운 호소였다.
집권당 원내 대변인이 추미애 장관 아들을 두둔하며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했다.
군대 가서 정상적으로 휴가 받았으면 안의사의 말을 실천한 것이라는 도발적인 통찰은, 안의사의 삶을 조금이라도 돌아봤다면 감히 꺼낼 수조차 없는 무지와 얕음의 결정체다.
혹시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말을 병사 복무규정쯤으로 이해한 것일까, 군인이라 스스로를 칭했던, 아니 칭할 수밖에 없었던 안의사의 처절한 몸부림에서, 이 정치인은 군인은 복무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교훈을 평소 느껴왔던 것일까?
안의사는 자신을 테러리스트라 폄하하는 일제의 시도는 날카롭게 예견했지만, 후손들의 탈영 논란에 자신이 소환될 것이라고는 아마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인의 행적이 정치적 다툼에 동원될 때, 거대한 헌신이 얼마나 단순하고 낮은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려질 수 있는지, 우리는 매우 씁쓸하지만 그래서 매우 적절한 사례를 지켜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