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시
안성맞춤이란 말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물길 안성천(安城川)은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부아산 남동계곡에서 발원해 경기도 화성시·안성시·평택시를 품고 흐르다 평택호와 아산만을 지나 서해바다로 흘러든다. 진위천·입장천·한천·청룡천·오산천·도대천·황구지천 등의 지류를 거느리고 있는 길이 74.5㎞의 긴 물줄기로 경기도 3대 하천이기도 하다.
경기도 안성에 들어서면 들이 넓고 산은 낮아서 푸근하고 넉넉한 기분이 든다. 고구려 때는 내혜홀(奈兮忽)이었다는데 해발 30~40m의 저지대로 지형이 낮은 동네라 하여 안성 토박이 말로 ‘낮골’이라 불렀다. 신라 때의 지명 백성(白城)을 거쳐 940년 고려조에 들어 지금의 안성이 되었다. 예로부터 산수가 온화해 자연 재해가 없고 각종 물산이 풍부해 살기 불편함이 없었다. 그래서 지명에도 편안할 ‘안(安)’자가 들어갔다.
안성천 여행 중 안성8경과 함께 안성 8미를 맛볼 수 있으니 놓치면 안 된다. 안성 1미는 안성한우, 2미는 안성국밥, 3미는 청국장, 4미는 민물어죽, 5미는 건강묵밥, 6미는 안성쌀밥정식, 7미는 안성우탕, 8미는 매운탕이다. 안성천변에서 만나는 안성 8경은 바라만 봐도 평안하고 고요한 사색이 드는 금광호수와 알프스의 초원과 목장을 떠오르게 해 어른과 아이 모두 좋아하는 안성팜랜드가 있다.
안성 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금광호수(안성시 금광면)는 1965년 농업용 저수지로 준공된 저수지로 호수면적이 무려 152만㎡(46만평)이나 된다. 금광호수는 꼭 브이(V)자 모양을 하고 있어 더욱 유명해진 저수지다.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맛집과 카페 등이 많아 관광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관광지다보니 맛집이 많다.
안성시에서 선정한 향토음식점으로 40년이 넘은 전통의 ‘독쟁이 추어탕집’에서 식사를 했다. 보양식으로도 먹는 추어탕은 맛을 내기 쉬운 음식이 아니라서 오랜 경력과 노하우가 필요한 음식이다. 추어탕에 들어가는 물고기 미꾸라지가 통채 나온다. 독쟁이라는 재밌는 이름은 식당 주변이 옹기골이란 지명에서 나왔다.
호수에는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박두진 문학길이 조성되어 있다. 1916년 3월 안성시 봉남동에서 태어난 박두진 시인은 말년에 금광호수가 바라보이는 곳에 집필실을 마련하고 머물렀다. 수변 데크길을 따라 호수가 훤히 바라보이는 곳에는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고, 박두진 시인의 호를 따서 지은 혜산정이라는 정자도 설치되어 있어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물멍하기 좋다.
혜산(兮山)은 '있는 그대로의 산'이라는 뜻으로 시인다운 호이지 싶다. 쉼터 공간과 산책로변 나무 팻말에 그의 시가 새겨져 있어 발길을 멈추고 읽어보게 된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둠을 뚫고 나온 시들은 더욱 찬란하다. 시대의 흔들림에 굴하지 않고 올곧게 살아온 박두진 시인의 숨결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안성지역에는 “이일, 칠일 안성장에 팔도물건이 널려있다.”라는 옛말이 있다. 오랜 역사를 품은 장터인 안성장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주는 말이다. 안성 오일장(안성시 서인동)은 조선후기까지 전주, 대구와 함께 서울의 관문으로 3대장에 들었을 만큼 규모가 컸던 시장이라고 한다. 현재의 안성중앙시장과 옆에 있는 안성맞춤시장이 그곳이다. 봄을 느끼기에는 전통 오일장만한 곳이 없다. 요즘 장터 좌판은 아낙들이 캐 낸 향긋하고 상큼한 봄나물로 가득하다. 다른 한 쪽에서는 뜨끈한 가마솥 국밥이 김을 무럭무럭 피우며 구수한 냄새를 진동시킨다.
옛날 안성장은 유기그릇과 가죽꽃신이 유명했다고 한다. 모두 사대부집의 소요였다. 안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안성맞춤’으로 대변되는 ‘유기(鍮器)’이다. 유기는 구리가 들어가는 놋쇠로 만들어 흔히 놋그릇이라고도 부른다. 안성 유기가 다른 지방보다 유명했던 이유는 깐깐한 서울 양반가들의 그릇을 도맡아 만들었기 때문. 안성 유기그릇은 제작 기법이 정교해 당시 양반들이 선호하던 작고 아담한 그릇을 만드는데 적합했고 품질이 뛰어나 사람들의 마음에 꼭 들었다. 바로 여기서 안성유기를 대표하는 ‘안성맞춤’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푸짐한 먹을거리도 장터 구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 안성하면 국밥이다. 예부터 안성장은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 또한 유명했는데, 안성장에서 떠돌이 장돌뱅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음식이 장터국밥이다. 안성소머리국밥은 1920년대 초 안성 우시장으로 이어지는 쇠전거리 한 귀퉁이에 작은 가마솥 하나를 걸고 팔던 국밥집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안성소머리국밥을 안성탕이라고도 한다.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매콤하고 얼큰한 국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 나면 봄기운으로 나른했던 심신은 어느새 보약 한 첩을 먹은 것처럼 힘이 솟는다.
안성시는 안성도심을 가로 지르는 안성천 제모습찾기 공사를 통해 지난 2006년부터 안성천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성천의 수질개선을 위해 하수 유입관을 설치 운영한 결과 하천과 주변의 악취는 모두 사라지고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돌아오는 등 큰 효과를 가져왔다. 또 공원과 체육시설, 산책로에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휴식과 건강을 다지는 등 시민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하천 주변에 고층빌딩이나 아파트가 없어서 탁 트인 하늘이 더욱 좋다.
하천에 생기를 불어넣는 청둥오리들과 익룡을 떠올리게 하는 거친 목소리의 왜가리, 늘 새하얀 깃털을 갖추고 다니는 깔끔쟁이 중대백로가 잘 어울린다. 백로는 전국 어느 하천에서나 볼 수 있는 친숙한 새지만 본래 여름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여름철새였다. 지구 기후변화로 인해 한국의 겨울이 덜 추워지고 하천에 얼음이 잘 얼지 않게 되면서 먹거리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아예 이 땅에서 자리를 잡고 사는 텃새가 되었다. 머리를 물속에 박고 꽁지만 밖으로 내민 채 물질을 하는 귀여운 오리들도 마찬가지. 본래 월동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겨울 철새였으나 이젠 사시사철 우리나라 하천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안성천의 다리 가운데 멋진 디자인으로 무지개를 떠올리게 하는 안성교에 이르면 ‘추억의 6070 거리’(안성시 신흥동)를 만날 수 있다. 천변에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거리를 조성한 것이다. 줄 타는 바우덕이가 맞이하는 거리 대문을 지나면 연탄가게와 이발소, 낮은 지붕의 치킨집과 커피숍이 자리 잡고 있다. 각 집집마다 직접 키운 쌀을 도정해주던 신창정미소, 각종 농기구나 도구를 만들어주는 우정대장간 등 100년의 역사를 가진 곳들이 추억의 거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주택 담벼락이나 골목에는 각양각색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볼거리를 더해준다.
'바우덕이' 캐릭터는 안성시의 마스코트다. 바우덕이는 안성의 대표 여성 재인(才人)으로 남사당패에서 활동하던 옛 인물이다. 남사당패는 조선시대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서민층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유랑 연예단으로 그중 안성 남사당이 가장 유명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바우덕이는 안성이 고향으로 남사당패 사상 유일무이한 여자 꼭두쇠(우두머리)이자 천민 신분으로 정3품의 벼슬까지 올랐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공역자들을 위로한 풍물놀이판을 벌인 공로로 당상관 벼슬을 하사받은 것이다.
바우덕이의 성은 김(金), 이름은 암덕(巖德). 바우덕이는 ‘암덕’을 한글로 풀이한 것이다. 그녀는 스물 둘의 꽃다운 나이에 폐병으로 숨을 거두기까지 뭇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줄타기를 하며 흥과 끼로 좌중을 놀라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일컬어 ‘어름산이’라고 한다. 남사당공연장(안성시 보개면)에서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흥겨운 남사당놀이를 볼 수 있으며 매년 9월 말이면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도 벌이고 있다.
안성천은 하류인 평택시에서 강처럼 폭이 넓어지면서 평택호와 아산만을 향해 흘러간다. 안성천에서 평택호로 이어지는 70여km의 자전거 길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소중한 체육시설이자 공원이자 관광자원이다. 안성시가 부각된 하천이름 때문에 평택시에서는 평택지역을 지나는 안성천을 평택강이라고 짓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안성천 물길은 남부 평야 지대인 오성뜰을 적시며 지나다 평택호로 이어진다. 물가에 산책로를 겸한 자전거도로가 있어 평택시민은 물론 인근 지역에서도 자전거를 즐기기 위해 평택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