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실 자기 뜻대로 일을 결정하지 않는다. 좋고 나쁨을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세상과 타인의 방법을 흉내 낼 뿐이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망설임과 후회가 남는다. 그럴 바에야 한 번쯤은 스스로 완전한 알몸이 되어야 한다. 어떤 충동이 내면에서 솟아나는지, 무엇이 갖고 싶은지, 어떤 점이 불안한지, 무엇이 자신을 괴롭히는지를 분명히 확인하라.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 진정한 나의 가치관과 선악의 기준을 분명히 세우라. 흉내 내기가 아닌 독창적인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 헤르만 헤세의 일기 (1921)
우리는 때때로 개성을 강요받곤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누구보다 빠르게 트렌드를 앞서나가는 것이 개성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개성이란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을 갖는 것입니다.
아무리 독특하고 기상천외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모습이 자신의 기준이 아닌 타인의 방법을 흉내 낸 것이라면 그것이 독창적인 것일까요? (그 모습을 지속적으로 내재화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입혀 간다면 그건 또 독창성의 발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남과 다른 존재이고 싶은 마음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패션의 관점에서는 더욱더 그러한 것 같습니다. 교복을 입으며 전체와 융합을 중시 여기는 시절엔 더욱 그런 마음이 컸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교복에서 드러낼 수 있는 신발과 가방에서, 그 위에 입는 아우터에서 다름을 발산하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교복을 벗고 각자의 길을 가는 순간이 오듯 어느 시점부터 모두가 다른 존재임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다름’을 쫓기보다는 ‘나다움’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안으로 던지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하나의 단면이 한 개인의 개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철 과정에서 움트는 것이 개성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그 기준을 지켜나가야 고유함이 생기게 되니 개성이란 것에도 지속적인 시간이 쌓인 진정성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형적인 모습보다는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삶의 단면에서 그 사람의 고유의 개성을 느끼게 됩니다.
이미 서로 다른 우리들이 ‘나다움'을 채워나가며 ‘우리다움’을 공유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