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보니 캥거루 새끼였다

빌어먹을 캥거루 새끼 1화

by 스윗드림

난 캥거루다. 아니다. 캥거루 새끼다. '캥거루족'이란 학교를 졸업해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이라고 아주 좋게 포장하고 있지만 그냥 빌어먹을 캥거루 새끼인 것이다. 부모님 품에서 벗어날 생각 없이 그저 취업난이 힘들다, 요즘 집 구하기 힘들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빌붙어 있는 족속들인 것이다.


캥거루족이라는 단어가 경제용어사전에까지 나오는 거 보니 내 주변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취업문제가 심각해지고, 일본에서는 돈이 급할 때만 임시로 취업하는 뜻으로 프리터(freeter)라 부르고, 영국에서는 부모의 퇴직 연금을 축낸다고 하여 키퍼스(kippers)라 부른다. 일본에서는 2030의 캥거루족 상당수가 중년이 되어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중년 캥거루족으로 남아있는데 이들은 '기생(parasite) 독신'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냥 피 빨아먹는 존재들인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람인 줄 착각하고 있었지만 아니었다. 캥거루 주머니 안에 숨어 필요할 땐 쏙 숨어버리고 필요할 땐 나와서 먹이만 먹는 동물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내로남불인 셈이다. 사실 캥거루라 하기도 미안하다. 캥거루는 코알라와 함께 그 명성만으로도 호주의 대표 동물일 정도로 국가 이미지를 BTS급으로 상승시킨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밀조밀한 눈코 입이 보기만 해도 귀엽지 않은가? 또 수컷 캥거루는 성인이 되면 근육질로 변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근육의 윤곽이 뚜렷해지기도 한다(쩐다..). 긴 꼬리와 튼튼한 허벅지가 특징이며 두 다리로도 콩콩 잘 뛰어 펀치를 날리며 싸움도 개 잘한다. 그러나 캥거루 새끼는 치열한 과정을 거쳐 어머니 배로 들어간다고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가 젖을 먹고 자라야 하며 아무리 오래 있어도 1년이면 반드시 독립을 한다고 한다. 개만도 못한 사람이 아니라 캥거루만도 못한 사람인 것이다.

너 정말 귀엽고 멋있고 다 가졌구나! @Robert Koorenny, Unsplash


나란 캥거루 새끼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해야 해서 엄마가 차려주는 따끈한 밥을 먹고 회사 갔다 오면 내 방은 깨끗하게 청소되어있다. 이 정도면 그냥 캥거루 새끼가 아니라 빌어먹을 캥거루 새끼인 것이다. 이쯤 되면 왜 나를 안 버리나 궁금할 때가 있다. 버려도 시원찮을 판에 밥도 주고 청소도 해준다. 그리고 귀엽고 멋진 캥거루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캬, 정말 좋은 세상이다.


처음부터 캥거루 새끼처럼 살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빌어먹을 세상에서 어쩌다 보니 캥거루 새끼가 되어있었다. 아니 태어나보니 캥거루 새끼였다고 하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 같다. 그것도 빌어먹을. 남에게 구걸하여 거저 얻어먹다는 뜻의 '빌어먹다'와 같은 표준어 표현으로는 '배라먹다'가 있다. 소설 《골목 안》 중 한 글귀는 마치 캥거루가 캥거루 새끼를 보고 하는 말 같아 찔린다.


한 시간 반이면 냄샌 또 좀 했겠어? 하지만 그 순하디 순한 아범이 갇힌 건 억울한데. 그 배라먹다 뒈질 년이나 아주 똥통 속에 가 빠져서 꼭 세 시간만 허우적거리지 않고서
박태원《골목 안》



일본에서는 '코도모베야오지상(중년 어린이)'로 한국에서는 '캥거루족'이라 불린다. 지난 3월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한국 30대 미혼 인구 중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이 55%, 40대 초반 미혼 인구의 비율도 44%가 넘었다. 이 중의 42% 이상은 무직이어서 1인 가구에 비해 경제적 자립도가 훨씬 낮게 나타났다.


일본 당국은 이를 '히키코모리'라 정의한다. 취학, 취업, 교류 등 활발한 활동 없이 6개월 이상 집에 머무는 상태의 청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도 청년층 은둔형 외톨이 숫자가 20~30만 명으로 추정된다. 고용환경의 피해자들이자 또 취업난이 심해 자신감과 자존감이 하락하여 교류조차 하지 않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나라는 인간, 아니 캥거루 새끼를 반성하며 다른 캥거루 새끼들도 힘내서 주머니를 같이 탈출하자는 마음에서 글을 써보려 한다. 캥거루 새끼도 1년 만에 독립하는데 까지껏 못할쏘냐? 이러다 못할 수도 있지만 캥거루 새끼로써 죄송한 마음을 글로라도 남기려 쓴다. 기획한 목차는 아래와 같으며 쓰는 이의 정신상태와 기분에 따라 매우 바뀔 수도 있음을 미리 알린다. 전 세계 캥거루 새끼들 힘내자!!


<빌어먹은 캥거루 새끼>

1. 태어나보니 캥거루 새끼였다.

2. 엄빠는 나를 왜 안 버리는 거지?

3. 캥거루 새끼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닌데

4. 빌어먹을 세상 탓인가?

5. 캥거루 새끼 생활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6. 희망고문으로 살다 보니 고문만 더 심해진다

7. 인간으로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8. 다음 세상엔 그냥 캥거루로 태어날게요.

9. 그냥 호주로 가야 하나?

10. 캥거루 새끼도 나름 고충이 있다.

이렇게 귀여운 캥거루 이름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자 @Melody Ayres-Griffiths, Unsplash


<참고 자료>

- 캥거루족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82949&cid=58583&categoryId=59179

- 캥거루족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79901&cid=42107&categoryId=42107

- 캥거루 나무 위키 https://namu.wiki/w/%EC%BA%A5%EA%B1%B0%EB%A3%A8

- "마흔넘어 부모 얹혀사는 남녀 61만명"…日'중년 어린이'가 뭐길래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1/06/542921/?_ga=2.173411683.1566644950.1629295193-1363796265.1629295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