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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Oct 29. 2023

일 년 전 오늘을 기억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맴도는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그럼에도 한낮에는 쾌청한 날씨가 펼쳐져 자꾸만 밖으로 나돌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가만히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는 것은 잠시 멈추고 말이에요. 강변을 달리고, 동네의 작은 산을 오르고, 친구들과 하릴없이 노닥거리며 시간을 채우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


일 년 전 오늘의 저는 어느 한 전시장에서 하루 종일 책을 구경하다가 배낭을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해는 이미 저물었지만, 여명으로 인해 하늘빛은 찰나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온종일 실내에 있던 것이 아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초승달이 빛나고 있었거든요. 가던 길을 멈추고 호를 그리며 새어 나오는 저녁 하늘의 틈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그 사진을 SNS에 올릴까 하다가 왠지 모르게 혼자 간직하고 싶어 마음을 추슬렀던 기억도 있어요.


이처럼 하늘을 오래 바라본 날은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 같아요. 마치 일 년 전 오늘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당신은 일 년 전 오늘을 기억하시나요? 저에게 초승달이 뜬 날로 기억하는 2022년 10월 29일은 우리 곁에 있던 소중한 이들이 하늘의 별이 된 날이기도 합니다.


연인과 가족과 친구와 함께 축제를 즐기러 길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영문도 모른 채 잃은 이들을 기억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향해 희망과 사명으로 자신을 내던진 이들을 기억합니다. 살아남았음에도 안도감보다 10.29라는 숫자를 마주하는데 고통을 겪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삶의 터전으로 그곳을 여전히 일궈나가야 하는 이들을 역시 기억합니다. 네, 일 년 전 오늘은 사회적 참사가 일어난 날입니다. 바로, 10.29 이태원 참사입니다.


재난이라는 의미의 영단어 ‘Disaster’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과거 사람들은 길을 찾을 때, 밤하늘의 별을 이정표 삼아 바라봤다고 하죠. 별이 없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기에 궂은날이나 악천후는 이런 점에서 재난의 상황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 이유로 별이 사라지는 것이 재난이라는 단어가 된 것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의 상징물은 별입니다. 세상을 떠난 159명의 희생자는 밤하늘의 별이 됨과 동시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무너진 사회 안전망을 밝혀주는 빛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별들이 빛나는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일 년 전과 달리 보름달이 떴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밤하늘에 별이 잘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런 탓에 오늘은 보름달을 마냥 반갑게 마주할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 제가 사는 서울 하늘 아래에서는 별을 제대로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 하늘에 별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닌 셈인 것이죠.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어떤 상황에서나 별을 보려는 의지를 말입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보름달에 가려지고, 낮의 햇빛에 여지없이 가려지고, 옅은 구름에도 쉬이 가려지고, 도시의 현란한 빛에 가려지는 별을 보겠다는 마음을 지녔으면 합니다.


그러니, 언제든 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밤하늘에 보이는 것이 보름달뿐인 오늘 같은 날에도 말이에요.



이천이십삼 년 열한 번째 보름달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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