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마주친 교토 스타일의 휘낭시에를 파는
산책길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 카페가 생기기 몇주 전, 카페가 생길 거라는 걸 먼저 알았다. 지도 앱을 켜놓고 [카페]나 [베이커리], [음식점] 따위를 종종 '찜'해두는 덕이다. 사장님들이 이제 지도 앱에 미리미리 가게 이름부터 신고해두는 시대다. 종종 근처를 걷다가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윈도우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어느날 가게 입구에 석등이 생겼다. 석등이 생겼다고? 왜? 석등 말고도 풀과 이끼와 콩자갈, 작은 연못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그런 건 (익선동 같은 데) 가끔 있었는데 말이다. 동네에 이런 걸 만드시다니, 사장님이 무슨 생각일지 궁금했다. 이번 주에 가게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산책하다가 슬쩍 들어가봤는데 정말 교토의 어딘가가 생각나는 인테리어다. 새집 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교토.
새로운 카페가 유행처럼 번지다 못해, 골목골목을 넘어 도심과 변두리를 가리지 않고 스며드는 날들. 뭐, 물성과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야 마다할 까닭이 없다. 사장님만큼이나 카페에 진심인 사람들이 벌써 속속 찾아오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인테리어를 보며 금액을 대강 가늠해본다. 사장님의 주머니는 안녕하겠지? 사장님 주머니보다야 내 주머니 사정이 문제가 아닐까. 그래, 공간을 보니 돈의 맛이 좀 나는 거 같다. 자금 사정에 한줌 보탬이 되시길 바라며, 주머니를 열고 메뉴를 고른다. 예전에는 커피값 아껴서 적금 뭐 이런게 유행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커피값 얘기 같은 건 하지 않는 거 같다. 주력 메뉴는 아무래도 디저트인 듯 카운터에 디저트 모형이 예쁘게 올라와 있었다. 휘낭시에와 카스테라와 푸딩은 딱히 일본적이지는 않았지만, 비주얼만큼은 참 일본스러웠다.
주말에는 어딜 갔었지? 지난 주에는? 그 전에는? 줄을 서서 들어간 누데이크에서 딱딱한 양빵을 씹었고, 북촌 오설록플래그십스토어에서 증편을 녹차 스프레드에 찍어 먹었다. 맛있었나?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카페를 고를 때 맛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뭔가, 새롭고 낯선 곳에 가고 싶었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벗어나서 비일상적인 어떤 공간을 탐색하고 싶다. 주중에는 구글밋에서 배경을 선택하면 나타나는 눈 내리는 낯선 카페, 오후의 햇살이 길게 드리워진 외국의 어느 카페를 보며 회의를 했다. 주말이 되면 그런 이국적인 카페에 가고 싶었다. 전염병이 처음 유행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일상의 파괴를 걱정했지만. 전염병이 일상이 된 지금은 비일상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경로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생존을 위한 일상을 못견디겠다고 느끼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사러 간다. 유행처럼 나타나는 반짝이거나 키치스러운 카페도 좋고, 갑작스럽게 발견한 오래된 카페도 좋다. 혹은 매번 들리는 단골 카페도 좋다. 생존을 위한 집-회사가 아닌 그 어디라도, 일상을 잠시나마 환기할 수 있는 곳. 어쩌면 우리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장 가깝고 낯선 공간이라 우리는 자꾸 자꾸 카페를 찾는 게 아닐까.
아, 짧은 산책길이라고 주머니에 흔한 카드 한 장 없이 나왔다. 내일 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