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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디미 Mar 06. 2022

전시

4.4로부터 죽음으로의 여정 -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나는 어디에서 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딘가에서 전시를 준비하다 죽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주 먼 나라에 있을 것 같군요. 울란바토르에서 회고전을 진행한다거나요. 늙은 광대처럼, 언제나 여행하다 길 위에서 죽는 거예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4.4​》 전시를 준비하다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전시를 준비하다 세상을 떠났고, 울란바토르는 아니지만 부산이 그의 첫 회고전이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그의 말대로 된 셈이다. 한국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울란바토르보다 부산이 더 '먼' 나라처럼 여겨질 것 같으니 말이다. 다만 뭐랄까, 자신을 '늙은 광대'에 빗대긴 했지만 그는 노인보다 훨씬 더 젊게 느껴졌다. 예술가들은 영원히 아이로 남는 걸까, 자발적으로 길에서 죽기를 꿈꾸는 자들은 십대들 뿐이다.


나에게도 장래희망을 물으면 객사라고 대답하던 시절이 있었다. 멈추느니 죽는 게 낫다고 곧잘 말하던 날들이었다. 죽음을 향해 코웃음을 치던 어린 내가 전염병의 시대를 사는 어른이 됐다. 죽음이 곳곳에 드리워지자 나라마다 문을 걸어 잠갔다. 여행은 가장 먼 단어가 되었고, 길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돌림노래처럼 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밥을 먹고 약을 먹었다. 죽고싶을 만큼 아파서, 살고 싶었다.


죽음이 아무데서나 불쑥 튀어나오는 시대에야 삶을 다시 제대로 마주본다. 죽음을 트라우마로 겪은 사람들은 죽음이 현재라는 것을 좀더 생생하게 느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944년(전시 제목인 4.4와도 관련이 있다)에 태어난 작가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등 트라우마(쇼아shoah)를 겪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부정당하던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볼탕스키의 대표 작품에 나타나는 일련의 어린이 흑백 사진은 꼭 영정 사진을 닮았다.


<기념비>


해설에서는 대표작 <기념비> 등에 사용된 사진 속의 어린이들은 쇼아로 희생된 어린이가 아닌 '어린 시절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최초, 시작은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을까 싶다. 각인된 트라우마는 잊고 싶다고 잊혀지는 것도 아니고, 선택적으로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특기할 점은 그가 트라우마에서 나아가 "경험의 익명화를 통해 해체의 아우라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버틀러의 표현을 잠시 빌려오자면 (어린 시절의) 상실을 공유함으로서 우리는 '우리'일 수 있다.


버틀러가 말한 "애도는, 상실로 인해 우리가 어쩌면 영원히 변하게 된다는 점을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 초기의 사진 및 영상 작업을 보는 내내 나는 볼탕스키가 아주 기민하고 특별한 '애도'의 능력을 가졌음을 느꼈다. 볼탕스키는 그 시대를 겪어야만 했던 모든 (어린)이들, 가해자이자 피해자일지 모르는 그들을 흐릿하게 호명한다. 영정처럼 사진을 작품 안에 배치함으로써 작가는 누군가의 상실을 기억하고, 함께 슬퍼하고 애도함으로써 폭력과 고통에 맞선다.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흑백 사진을 작가는 액자에 넣고, 조명하고, 천에 걸고, 찢고, 영사하고, 꼴라주하는 등 다양하게 시각화했다. 얼굴 하나 하나는 기억에 남지 않지만, 얼굴이 있었다는 사실은 잊혀질 수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초기의 영상 작업은 (얀 피케의 신체조각 같은) 프랑스 단편영화들을 떠오르게 해서 오히려 덜 충격적이었는데, <잠재의식>처럼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얼굴이 트라우마처럼 갑자기 불규칙하기 튀어나오는 것은 놀라운 은유였다. 일상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떠오르는 트라우마를 이보다 더 와닿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위) <인간> (아래) <탄광>


<저장소: 카나다> 이후 <코트>, <탄광> 등에서 볼 수 있듯 볼탄스키는 옷을 작품의 소재로 종종 차용하기도 했다. 사진과 옷은 둘다 신체의 형상을 직접적으로 기록하거나 드러낸다는 점에서 작가의 말대로 "현존인 동시에 부재를 의미"하는 매개체이다. 벽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옷들은 언뜻 아름답지만, 억류된 유대인의 개인 소지품을 남겨 둔 창고에 나치가 붙인 이름인 '카나다'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나면 섬뜩하기 그지 없다. (슈즈트리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단순한 옷더미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도 놀랍긴 했다)


"누구의 소유였는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개인성도, 추억도, 형태도 사라진 검은 옷더미"일 뿐인 '탄광'은 섬유 덩어리를 이토록 무거워보이게 연출함으로서 근원적 죽음을 표상한다. 그 위로 <인간>에 나타난 사진 속의 검은 얼굴들이 "영혼처럼 부유하는" 얇고 하늘거리는 섬유들에 전사되어 대비를 이룬다. 후기 작업에서 그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더욱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으로 확장한다. <황금 바다> 속 병원(응급실 담요), <그림자 연극> 속 해골과 같은 상징적인 죽음의 메타포가 등장한다.


흔들리는 풍경 속에서 무명의 영혼들을 애도하는 <아니미타스>는 개인적으로 전시 작품 중 가장 아름답고 인상깊은 작업이었다. 아니미타스는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 800개의 작은 종을 긴 막대에 매달아 수풀처럼 꽂고, 이를 총 13시간 동안 촬영한 영상 작품이다. 바람에 따라 천천히 흔들리는 종,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이어지는 마른 풀과 꽃들. 그 앞에 앉아 가만히 그 정경을 응시하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질 수밖에 없는 곳에 설치"된 종들이 "이후에는 미술관 내에서 스크린을 통해 애도의 기억을 재소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작업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대지의 시간​》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작업이었다)


<아니미타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독재 하에 살해된 수천 명의 정치범이 이곳에 묻혔고, 많은 사람들의 유해가 오늘날까지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볼탕스키의 <아니미타스>는 피노체트 정권의 억압에 시달려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리기 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제목 <아니미타스>는 스페인어로 "작은 영혼"을 의미하지만 칠레에서는 사막 고속도로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헌정된 이름입니다. 바람이 불면 종이 울리며 ‘영혼의 음악’을 연주합니다.


<아니미타스>는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망자들의 혼을 치유하는 애도의 장소는 때로 일본의 데시마섬이기도 했고, 이스라엘의 사해 근처이기도 했다. 작가는 죽음을 협의의 개인적 경험 혹은 광의의 보편적 개념으로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이 어딘가, 회색 지대에 위치한 '위태로운 삶' 속의 불특정 다수의 죽음-사건을 드러내어 공유한다. 가만히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나와 전혀 무관한 누군가를 마음 깊이 애도하는 경험은 전 인류적인 연대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애도는 산 자를 위한 행위이다. 볼탕스키의 작품 곳곳에는 죽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하는 어린 자신과, 성장하여 같은 슬픔을 겪은 이들을 애도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난다. "선행으로 일관된 삶을 살고 싶다면 얼마 안 가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되도록 자주 떠올려야 한다"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죽음은 삶에서 보다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미래를 기약하고 계산하는 삶이 아닌, 지금 현재를 온몸으로 살아가는 힘은 죽음에서 나온다.


죽음 앞에서야 모든 게 비로소 평등하다. 더할 것도 덜 것도 없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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