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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보라 Aug 07. 2021

첫 김장

며느리 들어오자 김장 시작하신 시어머님

친정에서는 김장날이란 게 따로 없었다. 고춧가루 들어간 김치를 안 즐기는 아빠 덕분이기도 했고, 엄마 또한 그때그때 조금씩 김치를 담가 먹었다. 때문에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 대량으로 절여진 배추며, 산더미만 한 고춧가루 포대자루를 본 기억이 없다. 늘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김치가 담가져 있었으니까. 냉장고에 김치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라면 먹을 때 김치를 꺼내지 않는 사람을 보았는가. 그게 바로 나이다. 해외여행 중에도 라면이 당겼지 김치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김치란 것은 내게 가끔 자장면을 먹을 때 곁들이는 단무지 만도 못한 존재였다.




(연애 중)

남편: "우리 집은 김장 안 해."

"정말?"

"엄마가 늘 큰삼촌 집에서 김치를 가져다 먹거든"


(결혼 후 첫겨울)

시어머니: “이제부터 우리도 김장을 하자."

"네???? 큰삼촌 댁에서 이제 김치 안 주신대요?"

"그런 건 아닌데, 이제 우리도 해 먹어야지.(며느리도 들어왔는데)"

"...... 네에"


(김장 날)

시어머니: “좀 이따 큰 삼촌네 식구들 올 거야."

"...... 네에? 왜... 왜요?"

"김장 도와주러 ^^^^^^^"



평생 스스로 김치 한 번 안 담가 본 시어머니는 가장 든든한 스승인 큰 외숙모를 초빙한 것이다. 그런데 그 스승님은 친히 조수들까지 대동하셨다. 본인의 딸과 며느리를. 차라리 남편의 직계가족이었다면 가깝게 지내야만 하는 사이라 감내했을 터인데. 시외가 친척들은 애매하게 거리감이 느껴져 불편했다. 나름 귀한 시간을 내어 왔을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남에게 의존하느니 뭐든 스스로 해결하는 게 편한 나였는데. 김치 따위가 뭐라고 그들에게 빚을 지는 게 거북했다.



어쨌든 시간 맞춰 그들은 오셨고, 나름 화기애애한 가운데 나 혼자만 어색한 김치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큰 대야 있니?"

"네?? 대야요? 음... 그게 어디 있더라... 어머님!!!"


"김장 비닐은 사뒀지?"

"(김장 비닐? 김치 담는 봉지인가?) 아... 어머님께 여쭤볼게요 ^^;  어머님!!!"



난 결혼 한지 일 년도 안 된, 즉 이 집에서 산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나를 집주인으로 대하며 김장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결혼하고도 전에 다니던 직장을 계속 이어서 다녔고 살림은 시어머님 몫이었다. 나는 이 집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부엌살림의 대부분은 어머님께서 원래 쓰시던 것이었고 내가 꾸린 것들이 아니기에 관심 조차 두지 않았다. 괜스레 부끄러워 얼굴이 벌게졌다. 직장에서 능숙하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내가, 여기서는 초보 인턴사원이 된 것 같았다.


"어라 생강이 없네!"

"어머 제가 나가서 사 올게요!!!!!"


벌떡 일어나 심부름을 자처했다.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차라리 심부름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하지만 심부름으로 땡땡이 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5분 남짓,

모든 걸 내려놓은 마음으로 김장의 과정에 참여할 수밖에.


태어나 처음으로 김치가 완성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눈으로 보았다.


우선 절임배추를 주문

도착한 절임배추를 소쿠리에 올려놓아 물기를 빼서 준비

야채 썰기(서울 김치라 매우 많은 야채가 들어감)

육수 끓이기(북어포, 각종 야채 넣고 푹푹)

육수 넣고 고춧가루 넣어 양념 만들기

김장 비닐을 넓게 펴고 그 위에서 절임배추에 양념 바르기



그런데 어라?

처음에는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듯 무겁게만 다가왔던 김장이 하다 보니 나름 재미가 있다.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힘들었지만 보람 있다고 해야 할까. 김장비닐을 넓게 펴고 둘러앉아 빨래하듯이 새빨간 양념을 배추에 문지르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게다가 나는 여기에서 서열상 완벽한 졸병 아닌가. 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 맘이 편하기도 했다. 김치 맛이 이상하다고 내 책임은 아니니까.



참여 인원이 많은 덕에 서너 시간 만에 상황이 종결되었다. 김장 경력 30년인 큰 숙모님 덕에 꽤 맛있는 김치가 탄생했고, 겉절이에 밥을 먹으며 해방감을 만끽했다. 갓 담근 김장 김치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김치통 6개가 꽉꽉 채워졌고 시어머님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그날 두 다리 쭉 뻗고 잤다.







다음 날 또 밥상 위에 올라온 겉절이를 나눠먹으며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내년부터는 우리 둘이 하자."


"(뜨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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