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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꽃애기씨 Aug 06. 2021

인어공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고통 vs.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고통


눈이 닿는 곳마다 빛의 조각이 있었다. 출렁이는 감색 바다 수면 아래로 수 만 조각의 반짝이는 조각들이 천천히 춤을 추듯 내려왔다. 물살에 흔들리며 각도를 바꿀 때마다 황금처럼 반짝이기도 했고 불꽃처럼 빨갛기도 했으며 크리스털처럼 투명했다. 다채로운 색으로 변하며 반짝이는 신기한 조각들. 이건 분명 다섯째 언니가 말한 육지의 ‘눈’이 틀림없다. 막내 인어공주는 황홀함을 느끼며 눈을 꼭 감고 반짝이는 그것들을 온몸과 은빛 꼬리로 흠뻑 받아냈다. ‘눈’을 이 깊은 바닷속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다섯째 언니는 작년 겨울 바다 위 세상에서 만난 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반짝이고 차가운데 만지면 사라지고 황홀하고 허망한 느낌만 남는단다.’라고. 하지만 막내 인어공주가 찾아낸 이 멋진 눈은 마치 할머니의 진주 꼬리 장식처럼 눈부시게 반짝였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하나하나 생생했다. 



인어공주는 습지 마녀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미끄덩한 진흙바닥이 부글부글 끓어대는 이곳을 찾아오고 싶지는 않았지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용기를 냈다. 지난달 열다섯 살이 되어 드디어 바다 위 세상에 나가본 인어공주는 그날 알았다. 자신은 더 이상 바다 아래 세상에 만족하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어공주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였던 인어공주가 바다 위 세상에 나갔다가 왕자와 사랑을 이루지 못해 거품이 되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 뒤로 인어 왕국에는 공주가 열다섯 살 생일이 되어도 바다 멀리에서만 육지를 훔쳐볼 수 있을 뿐 절대 다가가면 안 된다는 엄격한 법이 생겼다. 습지 마녀는 옛날 그 일로 인어 왕에게 팔이 잘리는 벌을 받아 더 이상 마법약을 만들 수 없게 됐다. 다만, 그럼에도 마녀는 바다 밖의 세상과 미래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어 이렇게 몰래몰래 손님이 찾아오곤 했다. 


누런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습지 마녀는 말했다.

“네가 궁금한 게 뭔지 알지. 너 아주 어리석구나. 하지만 네 뜻대로 그대로 될 거야. 자랑스러운 공주, 넌 슬픔도 얻게 될 거다. 네가 원하는 대로 그 ‘prince'와 만날 수 있을 게다. 대신 너는 너와 너희 왕국에 닥칠 재앙을 마주할 거다. 오해하지 말아라. 절대 내가 끌어들인 재앙은 아니니까.” 입을 삐죽이며 마녀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계속했다. “네가 그렇게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인간들이 자초한 고통이고 슬픔이다. 멍청한 인간들은 태양신과 공기 요정을 화나게 해 버렸구나. 그나마 다행인 건 그 ’prince'가 너의 슬픔을 알아봐 줄 거라는 거지. 난 더 이상 말해주고 싶지 않구나. 보다시피 너희 인어 덕분에 팔이 잘린 자리가 너무 쑤시거든.” 마지막 말과 함께 습지 마녀는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또 하나, 이번에도 넌 불멸의 영혼은 얻지 못할 것이다. 대신 다른 불멸의 것을 붙여주지. 차라리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게 낫다고 애원하게 될 걸? 클클클.” 문 뒤 나지막하고 음침한 웃음소리를 인어공주는 듣지 못했다. 


인어공주가 생일날 만난 그 ‘prince'는 인간임에도 인어처럼 유려하게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얕은 바다부터 어두운 심연까지도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이 도통 인간 같지가 않았다. ‘이상하다. 인간은 바다에 빠지면 죽은 인간이 되어 인어 왕국에 도착하기 마련인데.’  인어공주는 곧 비밀을 알았다. 입에 연결된 줄이 인간이 등에 매고 있는 ’prince'라고 적힌 통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 저기에 공기 요정을 가두었구나. 그래서 물속에서도 나처럼 숨을 쉴 수가 있구나.’ 멀리서 봐도 어깨가 넓고 훤칠한 ‘prince'를 멘 인간은 계속해서 바다 모래 바닥에서 무언가를 찾아내 바다 밖 배로 옮기고 있었다. 어떤 건 컸고, 어떤 건 작았고, 어떤 건 흉했고, 어떤 건 반짝였다. 인어공주는 그가 하는 일이 너무 궁금했고, 그를 도와주고 싶었고,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 


습지 마녀의 저주 같기도 한 예언을 듣고 난 인어공주는 곧바로 바다 위로 헤엄쳐 올라갔다. 두 손을 모으고, 은빛 꼬리와 금빛 긴 머리카락을 흔들며 헤엄을 치는 인어공주 주위로 아까 그 반짝이는 ‘눈’들이 춤을 추듯 몰려와 인어공주에게 붙었다. 위로 위로 헤엄쳐 올라가는 인어공주는 마치 빛 자체였다. 커다란 빛 덩어리가 된 인어공주가 수면에 도착하자 출렁이던 바다가 갑자기 고요해지고 붉은 태양이 꽃처럼 빛나던 저녁 하늘도 그 빛을 잃고 금세 어둑어둑해졌다. 오직 인어공주 주위만 환해졌고 그 모습을 ‘prince'가 입을 떡 벌린 채 넋을 놓고 바라봤다. 


“당신은... 말로만 듣던 인어공주군요. 너무 아름다워요. 그런데...!” 인어공주의 아름다움에 놀라 찬사를 터뜨린 prince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은 놀라움으로 커졌다가 곧 슬픔으로 가득 차 어두워졌다. “인어공주, 당신 온몸에 그것들이 이미 가득하군요. 언제부터 그랬나요. 내가 당신을 더 일찍 발견했어야 했는데.” 그는 말하기가 고통스러운 듯 입술을 깨물었다. “모두 우리 인간의 잘못이에요. 플라스틱 조각이 인어의 온몸에 박히다니. 지금까지 우리가 구출한 바다 거북이도, 괭이갈매기도, 흰 수염고래도 당신보다는 덜 아팠을 텐데. 이 몸으로 여기까지 헤엄쳐 온 건가요? 나를 만나러?” 


그제야 인어공주는 반짝이던 ‘눈’들이 자신의 온몸과 꼬리 비늘 사이사이, 머리카락 사이사이에서 날카롭게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prince가 무언가를 옮겨 싣던 배 위를 올려다보니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와 어부의 그물, 비닐봉지, 유리병, 노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쓰레기 사이를 코에 빨대가 박힌 거북이 한 마리가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prince는 바다의 쓰레기를 치우는 그린 다이버였다. 썩지 않고 영원히 바다에 남아 바다 생물을 죽이는 미세 플라스틱을 건져내는 그였기에 인어공주의 아픔과 슬픔이 한눈에 느껴졌다. 눈물을 흘리며 인어공주를 안았지만 인어공주는 아무 말 없이 슬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인어공주는 몸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물속의 모든 반짝이는 미세 플라스틱이 인어공주에게로 몰려들고 있었다. 눈을 감는 인어공주의 귀에 습지 마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인간이 자초한 고통, 너의 prince는 너의 슬픔을 알아볼 거다.’ 


검은 바다 아래로 반짝이는 눈송이가 자꾸자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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