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몇 명 안되는데 지원자는 많은 눈치였고 미리 얘기해보는 시간이라고 불려 가서 차와 다과에 선생님과 수다 떨던 그 시간은 다름 아닌 '인터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발기준'은 건강이 좋지 않아 스스로 식생활을 개선할 필요가 있거나, 마크로비오틱을 퍼트릴 수 있는 의지가 있는가 였다. 나는 요가강사니 적당하다 여겨져 기회를 잡은 것 같다.
계절과 환경, 동식물과 인간이 음양에 조화롭게 살아야 건강하다는 것, 뿌리 끝부터 잎사귀 끝까지, 씨앗부터 과육, 껍질까지 모든 부분에 생명이 깃들어있다는 것 등, 마크로비오틱의 핵심 이론은 그저 상식적이고 그저 단순하다.
어떤 음식이 음성이고 양성인지 가리는 것은 좀 어렵게 느껴졌는데 알고 나면 정말 쉽다. 태양을 많이 쬐고 땅에서 멀수록 음성, 태양을 덜 쬐고 땅에 가까울수록 양성이다.
그럼 이것을 어떻게 요리하고 먹는 것에 적용할까? 역시 쉽다. 내가 사는 지역에 나는 것을 제 철에 먹는 거다.
그렇다면, 요리하는 것도 쉬울까?
기존에 요리가 이미 익숙한 사람이라면 어려울 수 있다. 내 얘기다. 요리책, 요리 블로그 등으로 요리를 배운 나는 대략 주부 10년 차, 그중 2년은 채식요리를 했으니, 생전 처음 가보는 요리과정에서 모범생쯤은 되지 않을까 자만했다. '요리 못하는 사람이 여기선 더 잘한다.'라는 선생님 말씀이 옳았다.
마크로비오틱 요리는 덜어내고 기다려야만 한다.
모든 요리의 필수라 믿었던 마늘, 양파, 대파 등의 한국인 향신채소는 이곳에선 그 위상을 잃는다. 조미료는 질 좋은 간장, 된장과 소금이면 거의 모든 요리가 가능하다.
첫 몇 번의 수업에서는 '정말 간장만 넣고 완성이라고?'라는 질문을 속으로 여러 번 해야 했다. 그러고도 맛있는 음식의 맛을 봐야 결국 안다. 맛있다!
약불로 10분~30분씩 오래 끓이는 조리법은 아직도 익숙지가 않다. 선생님께 아주 잘 배워서 요리할 때는 자리 비우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실전에서도 지키고자, 며칠 전엔 주방에 의자도 가져다 놓았다.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하려면 다리가 튼튼해야 할 것 같다.
기초과정이 끝나고 여러 달이 지났다. 가족들에게 현미밥을 해주고 마크로비오틱 식 요리법을 지키는 것은 아직 익숙해지는 중이다.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한 입맛이라면 처음 몇 번은 맛없다 느낄 수 있지만 입맛이 정화되는 과정을 기다릴 수만 있다면 채소가 알아서 만들어주는 이 고급진 맛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내 가족들도 아직 그 과정이라는 핑계로, 나는 아직도 자주 현미 대신 오분도미로, 된장국 대신 김칫국이나 된장찌개로 타협을 한다.
이곳 주택으로 이사하고서는 외식이 전보다는 불편해져서인지 가족들이 집밥을 더 잘 먹는다. 더 잘 먹으라고 마늘 팍팍 간 팍팍 된장찌개, 김칫국 등을 자주 끓여주었는데,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일이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남편이 의자를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의자는 다시 조리대 곁에, 압력솥은 꺼내기 쉬운 곳에 두고 현미밥과 고급진 채소 요리를 자주 해주기로 마음먹는다.
첫 수업으로 만든 한 상. 심플한 조리로 맛있게 된다는 것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