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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Oct 12. 2023

엄마 없이 먹는 엄마 생일밥

취향이 참 잘 맞던 선배를 떠나보내고

엄마가 없는 엄마 생일을 맞이한 지 벌써 6번째.

이제는 만 세 살 지난 딸도 죽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아서 설명해 주었다.



“오늘 미미(할머니) 생일이니깐, 어린이집 다녀와서 저녁에 미역국 먹자!”

“미미는 없는데 어떡해?”

(이미 여기서 울음이 터지려 했지만 잘 참았다.)

“응, 할머니가 없어도 우리끼리 축하하는 거야. 그럼 할머니도 하늘나라에서 보시고 같이 기뻐하실 거야.”



엄마가 먼저 갔단 사실에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미역국을 끓이고선 펑펑 울었던 기억인데.

그런데 사실 이번 엄마 생일에는, 나에게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아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추석 연휴가 지난 첫날,

친한 전 직장 선배가 핸드폰이 꺼진 채로 출근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 밤, 선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전해준 다른 선배와, 그리고 또 함께 친했던 다른 선배와 통화하며 엉엉 울었다.


내가 가족들과 즐거운 추석 연휴를 보내는 동안 혼자 지내던 집에서 선배가 그렇게 가버렸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장례식이 끝난 이후 실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엄마는 내가 임종을 지켰고, 돌아가시기 전엔 회사를 휴직하고 간병생활을 했었기에 엄마의 죽음은 와닿았었다. 너무나도 슬펐을 뿐, 나에게 정말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그런데 선배의 죽음은 이상했다.

각자 사는 게 바빠 일 년에 한두 번 만날까 했었으니 당장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론 죽음이 와닿지 않는다. 가족만큼 절실하지 않아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선배가 갔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바람이 숭숭 드는 느낌처럼 다가온다.


가끔은 친구라는 존재가 나의 어떤 부분에 대해선 부모보다, 혹은 배우자보다도 많은 것을 안다.

이 선배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취향을 잘 아는 선배였다. 특히 문학, 드라마, 음악에 대해서.

우린 그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서로의 플레이리스트와 독서리스트를 추천했었다.

그냥 좋다 안 좋다 정도가 아니라, 우리끼리만은 대단한 평론가인 마냥 감상평을 주고받았었다.

같은 팀에서 일해서 책도 엄청 돌려 읽었었다.


시간과 에피소드가 있어서 쌓아지는 관계가 있다면 취향을 주고받음으로써 쌓아지는 관계도 있음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런 선배가 떠났다. 취향을 진지하게 나눌 메이트가 사라졌다. 나라는 사람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취향을 스스럼없이 나누던 메이트가 떠나서, 그래서 마음에 구멍이 난 것처럼 바람이 드는 건가 싶다.


게다가 선배는 이상하리만치 나에게만은 관대한 칭찬을 퍼부었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내심 그게 좋았던 것 같다.

“와, 너는 이거 하나는 진짜 잘한다, 너 같은 애가 드물다, 너는 참 좋겠다 “ 등의 말 뒤에 “거만해지지 마라”는 농담을 붙여서 우리끼리도 웃겨했었다.


내가 무얼 하든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게 혹시 늙는다는 것의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사람은 살아짐을 또 한 번 느끼고 인생의 허망함을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 주는 내가 뭘 해도 좋게 생각해 주던 사람이 떠나간 주간, 그래서 힘이 겨운 주간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세상에서 나를 최고라 여기던 사람, 돌아가신 엄마의 생일날이다.

오늘을 위해 어젯밤 늦게 미역국을 끓였고,

남편과 딸과 함께 조촐하게 엄마를 기렸다.

조촐하게 기리며 엄마를 떠올리던 나는,

그 선배에겐 남은 동시대와 후대의 가족이 없다는 것이 문득 슬퍼졌다.


영화 ‘코코’에서는 살아있는 세계에서 죽은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면 저승에서 또 한 번 죽게 되던데.. 선배의 진짜 죽음은 조금 더 빨리 오려나 싶어서 서글퍼졌다.


엄마를 기억하는 만큼이나, 선배도 내가 오래 기억해 줘야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 없이 생일밥을 먹는 오늘처럼,

선배의 생일도 그렇게 기념해 봐야지 하는 계획을 세워본다.

선배를 좋아했던 사람들과 만나서 선배를 떠올리며, 같이 슬픔을 줄여보자고.


늙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되는 선배였는데,

피터팬처럼 정말 그냥 젊은 채로 가버렸다.


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고, 과거가 아름다웠던 사람들의 과거를 자주 들여다보고 선망하더니,

본인이 그렇게 가버렸다.


윤하와 아이유 음악을 함께 좋아하고,

스윙스와 유아인을 좋아해 달라 설득하고,

(여전히 설득되지 못했다..)

나에게 신해철과 russian red를 소개해 주고,

함께 허지웅의 책을 바꿔 읽고,

책선물을 주고받고,

카더가든의 오디션 장면에 함께 감탄을 주고받고,

나의 아저씨와 먼 훗날 우리의 명장면을 꼽아보고,

아이묭의 음악을, 자우림의 숨겨진 명곡을, 힙합을 잘 모르는 나에게 본인의 플레이리스트를 선별해 공유해 주던 선배와의 취향 나눔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취향으로 쌓아 올린 관계이기에 특별한 날이 아니라 매일도 떠올릴 수 있게 되어버렸다.

내가 늘 곁에 두는 취향이기에 더 자주 생각나겠지.

선배를 기억할 후대는 없지만, 동시대를 산 내가 꽤 자주 그리고 더 오래 취향껏 떠올려야지, 오래 기억해야지 싶다.


늘, 젊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게 된 걸

그나마 기뻐하고 있을 것 같은 선배.

평안하게 잘 쉬길 바랍니다.

그곳에서 우리 엄마를 만나면,

선배가 나를

왜 그렇게나 좋아했는지,

왜 날 잘 챙겨줬는지 꼭 이야기해 줘요.

우리 엄마도 엄청 뿌듯해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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